이재명 대통령 "노동과 기업 모두 존중받아야"
경제6단체 "국가경제 타격…공급망·수출 악영향"
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걸린 삼성그룹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스1
총파업을 사흘 앞둔 18일 삼성전자 노사의 사후조정 회의가 중앙노동위원회 주재로 재개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경제계는 '파업'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대부분 인용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날 삼성전자 노사의 사후조정 회의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진행한 데 이어 오후 5시부터 추가 회의를 이어갔다. 19일에도 같은 시간대에 회의가 예정돼 있다. 총파업 예고일인 21일이 임박한 가운데 노사가 마지막 조정 국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대국민담화에서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긴급조정권은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쟁의행위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제도로, 이번처럼 파업 예고 단계에서부터 공개적으로 검토 가능성이 언급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 “극단은 역전 초래”…노사 공존·책임 강조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노동과 기업의 공존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는 노동과 기업 모두 존중받아야 하며, 기업 경영권과 노동자의 권리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투자로 인한 위험과 손실을 감수하는 주주는 회사의 이익을 공유받아야 한다”며 노사 양측의 권리를 모두 언급했다. 또 “과거 대한민국 헌법에는 노동자의 기업 이익 공유권에 대한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며 “현행 헌법에서도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만 공공복지 등을 고려해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모든 햇살에는 그림자가 있고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듯이,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극단은 필연적으로 역전을 초래한다”며 “강자가 더 많이 소유한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 돼 책임을 다하고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 경제6단체 “국가경제 타격”…공급망·수출 악영향 우려
경제계도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경제는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속에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18일간의 총파업은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미래 성장동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6단체는 AI 반도체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국가 생존과 직결된 과제라고 강조하며 “파업 강행 시 생산 차질로 글로벌 공급망 내 신뢰 훼손과 고객사 이탈, 국가 신용도 하락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24시간 연속 가동이 필수인 반도체 공정 특성상 라인이 멈춰설 경우 웨이퍼 대량 폐기와 장비 손상, 화학물질 유출 등 대형 안전사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 수출은 국가 전체 수출액의 약 37%를 차지하고 삼성전자는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25%를 차지하는 기업”이라며 “총파업은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악화, 자본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성과급 요구에 대해서도 “약 45조원 규모의 성과급 요구는 2025년 전체 주주 배당금의 4배를 넘는 수준”이라며 “기업의 지속 가능한 투자 여력과 미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해외 글로벌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근로자에게 사전 약정 방식으로 배분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법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일부 인용
법원은 이날 삼성전자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낸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수원지법 민사31부(신우정 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쟁의행위 전 평상시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시간, 가동규모, 주의의무로 유지·운영되는 것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생산 및 연구라인, 구매창고, 전기·전산시설, 폭발위험물질 및 유해화학물질 저장시설 등에 대한 점거 금지도 결정했다. 법원은 이를 위반할 경우 하루 1억원씩 지급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노조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마중은 “안전보호시설과 보안작업의 존재와 필요성 자체는 삼성전자 측도 인정하고 있었다”며 “쟁점은 구체적인 범위와 인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채무자(노조)가 주장한 ‘주말 또는 연휴’ 인력도 평상시 인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주말 또는 연휴 인력으로 안전보호시설과 보안작업 수행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마중은 “삼성전자는 평일 기준 약 7000명 근무를 주장했지만 노조는 주말·연휴 수준 인력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맞섰고, 이 부분이 인용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앞서 DS(반도체) 부문 인력 약 7만8000명 가운데 약 8.9% 수준인 7000명은 정상 근무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삼성전자 측은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법무법인 마중 의견서는 명백히 법원 결정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노조 측 해석은 가처분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밝혔다.
회사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 역시 별도 입장문을 통해 “채무자 측은 ‘주말 또는 연휴 인력 수준을 법원이 인용한 취지’라고 공지했지만 이는 결정문과 배치되는 해석”이라며 “그에 따를 경우 가처분 결정 위반 및 간접강제 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평은 법원 결정문을 인용하며 “‘평상시’란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을 의미함이 명백하다”며 “쟁의행위 기간에도 각 시설과 작업은 쟁의행위 전과 동일한 정도의 인력·가동시간·가동규모·주의의무로 유지·운영돼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전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은 이번 갈등의 본질이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초과이윤 배분 구조’를 둘러싼 새로운 산업 질서 논쟁에 있다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반도체 산업은 장기적으로 수익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있는 산업”이라며 “성과급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로 고정하는 방식은 금액 자체가 지나치게 커질 수 있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인력 운영이나 경영 측면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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