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떼쓰면 주는' 삼성, 이건희 성과주의는 어디로 갔나

조한진 기자 ㅣ hjc@chosun.com
등록 2026.05.21 16:04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걸린 삼성그룹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스1

삼성전자 노사가 20일 밤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에 도장을 찍으면서 파업 위기를 넘겼다. 노사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하는 DS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을 새로 만들었다. 특별경영성과급은 노사 합의로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가 재원이 된다. 올해 연봉 1억원인 직원은 세전 6억원, 적자 가능성이 큰 비메모리 부문도 2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6년 임금협약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노사는 성과급을 OPI와 DS 부문에 대한 특별경영성과급 2가지로 구분해 지급하기로 했다. 기존 지급 방식대로 연봉 대비 50%인 상한이 적용되는 OPI는 DS와 DX 전체에 적용되는 반면, 특별경영성과급은 DS 부문에만 지급된다. 이 때문에 완제품을 담당하는 DX부문 5000만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DX부문 구성원들은 극도의 박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줄을 잘못 서 이런 꼴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발 '성과급 폭풍'은 다른 산업계로 번질 모양새다. 자동차, 조선, 정보기술(IT) 등 핵심산업에서 '영업이익 N%'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구조가 고착화 되면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노사 합의 전까지만 해도 국민 여론은 사측의 편이었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삼성전자를 응원했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된 합의안이 나오자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게 식었다. "열심히 산 의미가 없다"며 허탈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온라인 게시판을 중심으로 들끓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단체는 '영업이익 12%는 성과급 위법'이라며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안팎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는 모양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6일 귀국길에 노사문제로 심려를 끼쳤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회장은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며 "우리 한번 삼성인임을 자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자"고 말했다.


이 회장이 매서운 비바람을 맞겠다고 했는데 정작 아프고 쓰린 건 국민이다. 삼성인의 자부심을 얘기했지만 삼성전자 내부는 더욱 갈라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삼성은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확실한 '성과주의'를 근간으로 성장해 왔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성과주의'는 1993년 선언한 '신경영'을 지탱한 가장 강력한 인사 원동력이었다.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핵심 철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이런 대원칙이 깨졌다. 앞으로도 큰 목소리로 떼 쓰면 무엇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성과 없어도 챙겨준다는 데 누가 열심히 일할까. 예측 가능성을 잃어버린 '이재용의 삼성호'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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