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연상 ‘탱크데이’ 마케팅 파문 일주일 만에 직접 입장
“변명 않겠다”…관련 직원 직무 배제·대표 해임 조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2024년 3월 회장 취임 이후 정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직접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회장은 26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 시민, 국민 여러분께 신세계그룹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 정용진 “모든 책임은 저에게”…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직접 사과
이번 사과는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진행한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스타벅스는 ‘탱크데이’, ‘책상에 탁! 탱크데이’ 등의 문구를 사용했다가 계엄군 탱크 투입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발표 내용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 직후 신세계그룹은 손정현 당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관련 임원을 해임했으며, 지난 19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스타벅스 불매 움직임까지 이어지며 논란은 확산됐다.
정 회장은 이날 사과문에서 “이번 스타벅스코리아의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서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끼셨다는 사실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 제 잘못”이라며 “저를 포함한 신세계그룹 구성원 모두 우리 사회의 역사와 희생을 기억하고, 국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또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며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국민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현장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 자제도 요청했다. 그는 “전국 매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 파트너들과 현장 직원들은 고객 한 분 한 분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일 뿐”이라며 “책임은 조직과 저를 포함한 경영진에게 있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스1
◇ “AI에 물어봤다”…스타벅스 직원들 “5·18 연상 전혀 못 했다”
이날 신세계그룹은 사과와 함께 자체 진상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그룹은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간 스타벅스코리아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내부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문제의 마케팅은 스타벅스코리아 커머스팀에서 최초 제안됐으며, 팀장과 담당자, 전략기획본부장,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4단계 보고 및 승인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세계그룹은 행사 주관 부서인 커머스팀 전원과 전략기획본부, 대표이사 등 결재라인에 대해 휴대전화·노트북 포렌식 검증과 교차 심문을 실시했으며, 관련 업무에 사용된 장치와 하드디스크도 모두 회수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까지 조사 결과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부사장은 “고의성을 갖고 해당 마케팅을 기획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조사 과정에서 법적·절차적 한계도 있었다고 밝혔다. ‘탱크데이’ 명칭을 최초 제안한 직원 등 커머스팀 소속 직원 3명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하면서 이들 간 대화와 업무 처리 과정을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사내 메신저 기록이 서버에 일주일간만 저장돼 최초 기획 단계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관련 직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가방에 쏙’이라는 기존 홍보 문구와 라임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 “AI에 물어봤다”, “5·18은 생각조차 못했고 이슈화 이후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인지했다”며 고의성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사건 직후 사내 메신저에서 “이런 문구를 하필… 그룹과 즉시 내용 공유하고 대응합시다”라고 언급한 내용이 확인됐다고 그룹은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조사 과정에서 일부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언행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는 사전 모의 등 고의성을 특정할 단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5일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 관여 직원 직무 배제·대표 해임…신세계, 후속 조치 총력
그룹은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이번 마케팅에 관여된 직원 5명 전원을 직무 배제했으며, 손정현 전 대표와 담당 임원도 해임 조치했다고 밝혔다. 향후 경찰 조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확인될 경우 즉각 해고와 함께 민형사상 책임도 묻겠다고 강조했다. 또 그룹 최고경영진 누구라도 부적절한 개입이나 의도가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마케팅 검증 및 리스크 관리 체계에도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룹에 따르면 논란이 된 마케팅은 4단계 승인 절차를 거쳤지만 어느 단계에서도 “5월 18일에 탱크데이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마케팅 합의자 7명 가운데 일부는 디자인 시안이 담긴 첨부파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케팅의 즉시성을 우선시하면서 과거 운영되던 법무팀 검증 절차도 생략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사안은 실무자 개인의 과실을 넘어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사회적·역사적 민감성 부재를 드러낸 사건”이라며 “마케팅 검증 및 리스크 관리 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룹은 ‘탱크 텀블러’ 명칭은 실제 물탱크에서 영감을 얻은 해외 제조사 제품명이며, 503mL 용량 역시 기존 17온즈 제품을 환산한 수치라고 밝혔다. 해당 제품은 2023년부터 한국뿐 아니라 호주·태국 등에서도 동일 용량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일본과 슬로바키아 등 일부 국가에서도 17온스를 503mL로 환산해 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니 탱크 텀블러 출시일인 4월 16일은 행사 업체 ‘브랜드데이’ 일정 조율 과정에서 확정된 것이며 세월호 참사일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당초 4월 20일을 제안했으나 행사 업체 측이 4월 16일로 일정을 확정 통보했다는 설명이다.
탱크 듀오 세트의 21% 할인율 역시 미니 탱크 텀블러 가격을 2만5000원에서 1만2500원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산출된 수치일 뿐 특정 날짜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신세계그룹은 “1999년 1호점 이후 27년간 스타벅스코리아에 보내준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큰 상처를 남겼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룹의 리스크 관리 체계와 내부 통제 시스템 부재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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