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핵심 부품 내재화·조직 개편 통해 양산 경쟁 속도
기술 검증 단계 넘어 생산원가·내구성·안전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부상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보스턴 다이나믹스 제공
화려한 공중제비와 브레이크댄스, 장애물을 뛰어넘는 점프와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보행. 최근 공개되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모습은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테슬라의 옵티머스, 유비테크의 워커 시리즈, 유니트리의 H1·H2 등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글로벌 산업계는 휴머노이드를 인공지능(AI)에 이은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다.
◇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 5년…현대차의 다음 단계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도 로봇 사업 전략을 본격적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 이후 로봇 기술 확보에 나선 현대차그룹은 최근 로보틱스랩을 기존 연구개발(R&D)본부에서 첨단차플랫폼(AVP)본부 산하로 이관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직 개편을 AI와 소프트웨어, 로보틱스 역량을 하나의 축으로 묶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로보틱스랩은 제조 현장용 로봇의 핵심 부품인 그리퍼(로봇 손) 선행 연구개발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과 물류 현장에서 물체를 집고 옮기는 역할을 담당하는 그리퍼는 휴머노이드의 생산 현장 투입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다. 현대차그룹이 핵심 부품 내재화에 나선 배경에도 향후 양산 체제 구축을 위한 준비 작업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이러한 움직임은 휴머노이드 산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과 맞물린다. 지금까지 휴머노이드 경쟁이 ‘얼마나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가’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기술 시연 중심의 경쟁에서 상용화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연구들을 종합하면 휴머노이드 산업은 기술 검증 단계를 지나 양산과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들어섰다. 과거에는 두 발로 걷고 계단을 오르는 것 자체가 기술적 성과로 평가받았지만 이제는 생산 원가와 내구성, 유지보수 체계, 현장 적용성이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기업의 휴머노이드 로봇 제품군. /자료=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논문 재구성
◇ 글로벌 휴머노이드 전쟁…기업별 전략도 제각각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업마다 서로 다른 전략을 앞세워 경쟁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동차용 AI와 자율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제조와 물류, 서비스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최신 모델인 옵티머스 Gen2는 손가락 끝 센서와 발바닥 토크 센서를 추가해 정밀 작업과 균형 유지 능력을 강화했다.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시험 운영 중인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지트는 물류 특화 전략을 택했다. 상자를 집고 운반하는 작업에 최적화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창고 환경에 맞춰 설계됐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는 2009년 처음 공개된 이후 점프와 구르기, 달리기, 공중회전, 3단 점프 등 고난도 동작을 구현하며 휴머노이드 운동 성능의 기준을 제시해 왔다. 오늘날에도 가장 뛰어난 동적 운동 능력을 보유한 휴머노이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거세다. 유비테크의 워커 시리즈는 연구용 시제품에서 산업용 제품으로 진화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워커 S는 자동차 공장에서 자재 운반과 품질 검사, 정밀 조립 작업에 활용되며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애지봇의 RAISE A1은 WorkGPT 멀티모달 대형언어모델을 탑재해 사용자 의도 이해와 환경 인식, 작업 계획 수립 능력을 강화했다. 2024년 생산량이 700대를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유니트리는 속도와 기동성을 앞세우고 있다. H1은 세계 최고 수준의 출력 성능과 민첩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H2는 최대 30kg 적재 능력을 바탕으로 물류와 자재 운반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G1은 휴머노이드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푸리에 인텔리전스의 GR 시리즈는 제조와 의료, 재활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다. GPT 기반 멀티모달 모델을 적용해 자연어 대화와 시각 인식, 음성 상호작용 기능을 구현했다.
노르웨이 1X 테크놀로지스의 NEO는 가벼운 무게를 강점으로 제조와 물류, 가정 서비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아메카 Gen2는 보행 기능 대신 인간 수준의 표정 표현 능력을 앞세워 고객 서비스와 전시 산업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결국 글로벌 휴머노이드 산업은 운동 능력 경쟁에서 정밀 조작과 환경 인식, AI 기반 의사결정, 인간과의 협업 능력을 중심으로 경쟁 축이 이동하고 있다. 업계 역시 향후 휴머노이드 발전 방향으로 시스템 통합과 환경 인식 강화, 민첩한 이동 능력, 정밀 조작, 산업 현장 적용 확대를 꼽고 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동작을 수행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제공
◇ 승부는 연구실 밖에서…현대차 휴머노이드 전략의 시험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대차그룹의 과제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경제성이다. 기술 구현 자체보다 생산 원가와 수익성이 중요해지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그리퍼 내재화에 나선 배경 역시 원가 절감과 공급망 안정성 확보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경제성은 부품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 현장에서 장시간 고장 없이 작동할 수 있는 내구성과 신뢰성까지 확보해야 비로소 사업성이 확보된다.
유지보수 체계 구축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휴머노이드는 자동차와 달리 관절과 센서, 구동계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구조를 갖고 있어 기존 정비 체계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전국 서비스 네트워크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전문 인력 양성과 별도 유지보수 시스템 구축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장 관심은 결국 현장 적용성으로 모인다. 휴머노이드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공정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업이 자동화에 적합한지, 인간 작업자와 어떻게 역할을 나눌 것인지, 생산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가 상용화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나믹스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기술을 확보했고, AVP본부 중심의 조직 개편으로 AI와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여기에 그리퍼 내재화를 통해 핵심 부품 경쟁력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휴머노이드 산업의 승부는 기술 시연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구축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의 최근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휴머노이드 산업이 연구실을 넘어 실제 생산 현장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최근 연구들이 기술성숙도(TRL) 격차와 상용화 과정의 여러 과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휴머노이드의 핵심 기술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산업 현장 적용을 위한 검증 과정에 가까운 문제"라며 "현재 공개되는 기술 수준만 놓고 보면 인간과 유사한 이동 능력과 작업 수행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2029년을 생산 현장 투입 시점으로 제시하는 것도 기술 개발 자체보다 돌발 상황 대응과 안전성 확보, 신뢰성 검증 등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실제 현장 적용 시점은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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