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시계추 외교'로 북·중·러 중심에 선 북한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6.06.09 15:49 / 수정 2026.06.09 16:01

지난 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CCTV화면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년 만에 북한을 국빈 방문했다. 올해 첫 해외 순방이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하룻밤 묵는 일정을 짰고 부인 펑리위안 여사도 동행했다. 중국 외교에서 배우자 동반 국빈 방문은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명분은 북중 우호조약 체결 65주년이지만 중국 측이 상당한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사실상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국가였다. 대외무역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이뤄졌고 식량과 에너지 공급 역시 중국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 경제를 상당 부분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판을 바꿨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군대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그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 외화와 군사기술을 제공했다. 최근 체결된 북·러 조약은 사실상 군사동맹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북한은 중국 이외의 강력한 후원자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러시아의 전략적 위성국가로 변하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 동북 3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만약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중국보다 커진다면 중국의 동북아 전략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시진핑의 방북은 북한을 관리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오늘의 상황은 1960년대 김일성이 보여준 절묘한 '시계추 외교'를 떠올리게 한다. 1950년대 후반 무렵 세계 공산권 국가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했다.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소련이 정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념 논쟁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은 국경 분쟁으로까지 발전했다. 1969년에는 우수리강의 전바오섬에서 양국 군대가 총격전을 벌일 정도였다.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 완충지대였던 북한은 이 기회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중국에게 소련의 영향력을 경계한다고 말했고, 소련에는 중국의 간섭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울지 않으면서 양측의 경쟁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에 중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북한에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척박했던 북한 땅에 공장이 세워지고 철도가 건설됐다. 발전소와 제철소가 들어섰고 최신 군사 장비도 도입됐다. 김일성 '시계추 외교'의 대성공이었다.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할아버지의 '시계추 외교'를 답습해 "우리에겐 러시아가 있다"며 중국이 북한을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8일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은 전략적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고 각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역내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한 핵심 주권이라고 주장해 온 만큼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관계를 "국가의 가장 중대한 제1 전략 사업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북한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중국이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취하는 정책과 입장을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양국 정상들 사이에 여러 수사적 표현이 오고갔지만 사실상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가장 중요한 후견인은 여전히 중국'이라고 전달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와 별도로) 중국과도 잘 지낼 것'이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김정은은 적지 않은 것을 얻었다. 러시아와 군사동맹 수준의 관계를 구축했고, 시진핑의 평양 방문을 이끌어내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보장받았다. 북·중·러 삼각관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데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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