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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시총 1위 '점프'…다음은 '메모리 슈퍼사이클' 2막

임윤서 기자 ㅣ seoo@chosun.com
등록 2026.06.22 17:53

HBM이 연 AI 시대, 이제 수요처는 데이터센터 밖으로
자율주행차·휴머노이드·AI 가전이 '다음 성장엔진'

SK하이닉스의 차세대 AI 메모리 HBM4E 12단 샘플 제품.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현재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을 메모리 성장 사이클의 시작 단계로 보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AI)이 스마트폰과 자동차, 로봇, 가전 등 실생활 기기로 확산될 경우 메모리 수요 기반은 한층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장 마감 기준으로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2079조6655억원으로 삼성전자 보통주 시가총액(2060조8132억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1999년 7월 29일 처음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오른 뒤 일시적인 순위 변동을 제외하면 2000년 11월 21일부터 25년 넘게 정상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번에 SK하이닉스에 선두 자리를 내주면서 장기간 이어진 시가총액 1위 기록에도 마침표가 찍히게 됐다.


다만, 개별 종목으로 보지 않고 삼성전자 우선주(180조7341억원)까지 포함한 기업 전체 시가총액으로 계산하면 시가총액 순위는 삼성전자 1위, SK하이닉스 2위가 유지된다.


시총 역전의 배경…AI시대 핵심 HBM


업계에서는 이번 시가총액 역전을 AI 시대가 반도체 산업의 가치 지형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과거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는 CPU와 GPU 같은 연산 반도체가 있었다. 컴퓨팅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산을 더 빠르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고,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 역시 프로세서 성능 향상에 집중됐다. 반면 메모리는 스마트폰과 PC 출하량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산업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같은 공식을 바꿔놓았다. 챗GPT와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은 수천억 개 이상의 파라미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답변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반복해 불러온다. 이 때문에 AI 시대에는 연산 능력 못지않게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AI 서버가 기존 서버보다 훨씬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HBM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메모리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반도체 업체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부품이다.


현재 메모리 시장 호황도 이러한 HBM 수요 확대가 이끌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메타, 아마존,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면서 HBM을 비롯한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시장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SK하이닉스 가치에 반영하고 있다.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평가받으면서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자동차 메모리 시장 성장 전망(2025~2031년).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 자료 재구성

자율주행 시대 성큼…車, 메모리 먹는 하마로


앞으로 메모리의 대규모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자동차다.


자율주행차는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 초음파 센서 등을 통해 주변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한다. 차량은 이를 단순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분석해 차선과 신호등, 보행자,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즉시 주행 경로를 결정해야 한다.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더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 업계가 미래차를 '바퀴 달린 데이터센터'라고 부르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같은 변화는 시장 전망에도 반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메모리 시장은 2025년 137억달러에서 2031년 327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마이크론 역시 자율주행 기술 확산에 따라 차량 한 대당 메모리 요구량이 현재 약 90GB에서 2026년 278GB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율주행 단계가 높아질수록 필요한 메모리 성능도 높아진다. 단순 저장공간을 넘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초고속 D램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포테인먼트와 블랙박스, OTA 업데이트, 주행 데이터 기록 기능까지 더해지면서 차량용 낸드플래시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로봇…메모리 없인 못 움직인다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메모리 업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수요처다. AI가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고 판단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로봇이 처리해야 할 데이터 규모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소리를 듣고 상황을 이해한 뒤 스스로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옮기거나 가정에서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장애물을 구분하고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며 적절한 동작을 실시간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가 생성되며, 이를 저장하고 처리하기 위한 메모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마이크론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16GB~128GB 수준의 모바일 D램과 1TB~4TB 규모의 저장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고급 스마트폰을 넘어서는 메모리와 고성능 노트북 또는 PC 수준의 저장공간에 해당한다. 특히 로봇 내부에서 AI가 직접 작동하는 온디바이스 AI가 확산될 경우 필요한 메모리 용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CES 2027 AI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홈 구현 예시. /CES

집 안까지 들어온 AI…메모리 슈퍼사이클 가속


가전시장도 잠재적인 수요처로 꼽힌다. AI TV와 AI 냉장고, 스마트홈 허브 등 차세대 가전이 확산되면서 메모리 탑재량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이들 기기가 저장·활용하는 데이터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도 함께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 기능이 고도화될수록 기기 내부에서 직접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와 연산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TV와 냉장고, 홈허브가 단순 가전제품을 넘어 독립적인 AI 컴퓨터로 진화하면서 더 큰 용량의 D램과 낸드플래시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인사이트에이스 애널리틱은 글로벌 AI 스마트홈 시장 규모가 2025년 184억7000만달러에서 2035년 1260억6000만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생성형 AI 확산 초기에는 데이터센터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견인했다면 앞으로는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AI 가전 등 실물 기기 영역으로 AI가 확산되면서 메모리 수요 기반이 더욱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시가총액 역전은 단순한 기업 간 순위 변화라기보다 AI 시대에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AI 산업에서 HBM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며 "SK하이닉스는 시장 선도 기업으로서 이러한 변화의 수혜를 받고 있으며, AI 응용처가 확대될수록 고성능 메모리의 중요성도 계속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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