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부터 초소형 칩까지 다루는 로봇 손 연구자·AI 자율제어 권위자 전면 배치
현대차 R&D·보스턴다이내믹스 전략 경험 이동건 부사장 상용화 진두지휘
업계 "이 인선은 우연이 아니다…조합만 봐도 삼성 휴머노이드 전략이 읽힌다"
사진 왼쪽부터 김현진 교수, 이동건 삼성전자 RX사업추진실 로보틱스전략팀장(부사장), 김의겸 교수.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대표이사 직속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로봇 사업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 업계는 삼성전자 휴머노이드 전략이 더욱 뚜렷해진 이번 조직 개편의 인적 구성을 주목한다.
삼성전자가 21일 대표이사 겸 DX부문장 노태문 사장 직속으로 신설한 'RX(Robotics eXperience)사업추진실'의 핵심은 이동건 부사장,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김의겸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의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휴머노이드의 핵심인 손과 제어 기술, 사업 전략을 각각 책임질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인 로봇 전략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김의겸 교수가 2021년 공동 집필한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논문에 수록된 실험 자료. 로봇 손이 핀셋을 이용해 보호필름을 제거한 뒤 소형 칩을 기판으로 옮기고 있다.
칩 옮기고, 달걀 깨지 않는 섬세함 연구 김의겸 교수
삼성전자가 김의겸 아주대 교수를 영입한 배경은 '휴머노이드 손' 기술이 있다는 분석이다. 휴머노이드에서 손은 가장 구현이 어려운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측도 로봇 손을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난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김의겸 교수를 영입한 배경 역시 제조 현장 중심 휴머노이드 전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의겸 교수가 2021년 발표한 논문에는 삼성전자가 구상하는 제조 현장 중심 휴머노이드 전략의 첫 퍼즐 조각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의겸 교수는 202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통합 링크구동 다관절 인간형 로봇 손(ILDA) 연구를 발표했다. 이 로봇 손은 알루미늄 캔을 압착할 정도의 힘과 날달걀을 깨뜨리지 않는 섬세함을 동시에 구현했고, 두께 0.9mm·길이 6mm의 얇은 사각 칩을 핀셋으로 집어 손 안에서 방향을 바꾸는 인핸드(in-hand) 정밀 조작에도 성공했다. 자체 무게 1.1kg의 손으로 18kg 아령을 들어 올리는 성능도 페이로드 시험에서 입증됐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초소형 칩 조작 능력이다. 삼성전자 측은 제조 현장을 첫 무대로 삼아 B2B, B2C로 시장을 단계적으로 넓혀가겠다는 로드맵을 밝힌 상태다.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삼성전자가 보유한 다양한 제조 현장 가운데 미세 조작이 요구되는 정밀 공정 라인에서 김의겸 교수가 실험실 단계에서 검증한 조작 기술이 곧바로 활용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로봇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상용화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가 사람 손 수준의 정밀 작업인데, 김의겸 교수 논문은 정밀 공정에 요구되는 수준의 조작을 이미 실험실에서 검증한 사례"라며 "삼성이 가장 어려운 손 기술 분야에서 검증된 연구진을 확보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의겸 교수 본인의 연구 방향도 휴머노이드로의 이동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아주대 IIR 연구실 특허 목록을 보면 삼성전자의 조직 개편 발표 이전 약 1년 사이에 신규 특허 11건이 몰아 출원됐고, 이 가운데 휴머노이드 손목 구조와 AI 기반 제어, 손가락 메커니즘 등 휴머노이드 손의 3대 축을 각각 다룬 특허가 세 건 포함돼 있다.
2023년까지 산업용 그리퍼와 센서, 농업용 로봇이 연구의 무게중심이었으나 2024년부터는 김의겸 교수의 특허 제목에 '휴머노이드(Humanoid)'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제조 현장에 즉시 적용 가능한 정밀 조작 기술 연구자를 확보한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가 속한 연구팀의 2013년 논문 자료. 드론에 장착한 2자유도 로봇 팔이 목재 블록을 집어 운반한 뒤 지정된 위치에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현진 교수의 경쟁력, 수십 개 관절 움직이는 제어 기술
손 기술에 이어 삼성전자가 주목한 두 번째 축은 로봇의 '두뇌'다. 김의겸 교수가 휴머노이드의 '손'을 책임진다면, 김현진 서울대 교수는 '두뇌'를 맡을 적임자로 평가된다. 김현진 교수는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20여 년간 자율비행과 AI 로보틱스를 연구해온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김현진 교수의 대표 연구 중 하나는 드론에 로봇팔을 결합해 공중에서 물체를 실시간으로 조작하는 '공중 매니퓰레이션(Aerial Manipulation)'이다. 2013년 IROS에서 김현진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이동체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고난도 제어 기술을 제시했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수십 개 관절을 동시에 제어해야 하는 휴머노이드의 핵심 기술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한다.
삼성전자 측 역시 강화학습과 물리 기반 학습을 접목해 로봇이 환경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는 제어 기술을 발전시켜온 점을 영입 배경으로 제시했다.
세계 최초 상업화 인간형 로봇 플랫폼 '휴보2(HUBO2)'. /레인보우로보틱스 제공
3개월 만에 로봇 사령탑…삼성 휴머노이드의 마지막 퍼즐
마지막 퍼즐은 사업 전략을 총괄할 실행 책임자다. 이동건 부사장의 배치는 이번 인선의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동건 부사장은 지난 5월 기획팀 부사장으로 신규 선임된 지 약 3개월 여 만에 RX사업추진실 로보틱스전략팀장을 맡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규 부사장이 3개월도 안 돼 미래 성장사업 핵심 조직을 맡는 사례는 드물다"며 "삼성이 로봇 사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 보여주는 인사"라고 말했다.
이동건 부사장의 경력은 자동차 전문가에 가깝지만 업계는 그의 '복합 시스템 통합' 경험에 주목한다. 그는 현대·기아차에서 연비개발팀 책임연구원과 차량성능전략팀장, 연구개발경영기획실장을 거치며 동력원 효율화와 차량 성능 아키텍처 설계, R&D 전략을 총괄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 재직 당시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운영 방향을 포함한 로봇 전략을 주도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한 로봇업계 전문가는 "휴머노이드 역시 배터리와 모터, 수십 개 관절, 원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동차 개발과 닮아 있다"며 "자동차 개발 경험이 그대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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