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일본 다카이치 총리의 위험한 승부수
등록 2026.08.13 13:53
  •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7월31일 제5회 '지역 미래 전략 회의'에 참석해 각료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 총리 SNS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7월31일 제5회 '지역 미래 전략 회의'에 참석해 각료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 총리 SNS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재정건전성 우선’이라는 자민당의 오랜 경제철학에 도전하고 있다. 국가부채가 많으니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재정부터 건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존 사고방식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다카이치는 “재정 건전화 일변도의 자민당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다.  나라빚을 줄여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과감하게 돈을 풀어 경제를 키우고 그 결과로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자는 주장이다. 이른바 ‘책임 있는 적극재정’이다.

    다카이치는 일본의 지난 30년을 문제 삼고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긴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을 경험했다. 기업은 투자를 꺼렸고 국민은 소비보다 저축을 택했다. 설상가상 정부마저 국가부채를 우려해 지출을 억제했다. 다카이치는 이것을 ‘지나친 긴축 사고’라고 비판했다.  정부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니 경제가 커지지 않았고, 경제가 커지지 않으니 막대한 국가부채 부담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카이치 총리는 순서를 바꿨다. 당장 시급한 AI, 반도체, 조선, 방위산업, 에너지, 경제안보 분야에 정부가 먼저 돈을 쓰면 기업이 뒤따라 투자할 것이고, 일자리가 생겨 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면서 GDP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GDP가 국가부채보다 빠르게 증가하기만 하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낮아져 재정 건전화를 이룰 수 있다.

    이에 대해 재정건전파 세력들과 재무성은 반대 입장이다. 이들이 보는 일본 경제의 현실은 냉혹하다. 일본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채를 짊어진 선진국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성장하면 갚을 수 있다”며 국채 발행을 더 늘리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부채에도 불구하고 재정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제로금리 덕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금리가 오르면서 정부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국채 이자 부담이 커지면 세금을 거둬도 정작 중요한 교육, 복지, 국방, 첨단산업투자에 쓸 돈이 없어진다. 더욱이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세수는 감소하는 반면 연금 및 사회보장비 지출은 증가하고 있다. 재정건전파들은 최근의 엔저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일본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달러 수요를 늘려 엔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엔저가 항상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수출기업들은 같은 달러를 벌어도 엔화로 환산한 이익이 커져 임금을 높일 수 있고 주가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나친 엔저는 문제를 낳는다. 일본은 석유, 천연가스, 원자재, 식량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엔저는 일본인들이 지불해야 할 물가를 올려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다.

    다카이치가 재정건전파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정부가 빚을 내 투자한 돈이 실제 경제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재정건전파들은 그럴 가능성을 매우 희박하게 보고 있다. 그들은 투자자들이 일본 정부의 성장 전략을 믿지 못해 국채를 팔 것이고, 이로 인한 금리 상승으로 정부의 이자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자 부담을 줄이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이는 또다시 엔저를 부채질 해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악순환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카이치는 지금 일본 경제를 놓고 상당히 큰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의 논리는 명확하다. 정부가 먼저 투자하면 기업이 움직이고, 기업 생산성이 오르면 임금과 소비가 증가하고, 결국 경제성장률이 국채금리를 웃돌 것이라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일본은 국가부채를 억지로 줄이지 않고도 GDP 대비 부채비율을 낮추면서 30년 저성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결과는 정반대다. 경제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는데 국가부채는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상승해 엔화는 더 약해질 수 있다. 일본은행이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져 후대가 갚아야 할 빚을 더 늘린 무리수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튼 다카이치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이제 그 승부수의 성패는 경제 성장률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