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자리'에 대한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저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연기를 못하니까 감독님들이 '집에 가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 그때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무수히 많이 했다. 주연을 맡았을 때도 '내가 이걸 감당하기에 아직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나고 보니, 그냥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내 자리'인 것 같더라. 호수의 그 대사가 정말 좋았다."삶의 많은 것이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시작이 두렵기도 하다. 박보영은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통해 미지, 그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결심도 잠시, 1인 2역이라는 큰 숙제 앞에 두려움이 앞섰다. 박보영은 "사실 저지르고 후회했다. 촬영 전날까지도 도망치고 싶었다"라며 솔직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미지의 서울' 종영을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BH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박보영과 만났다. 작품은 얼굴 빼고 모든 게 다른 쌍둥이 자매가 인생을 맞바꾸는 거짓말로 진짜 사랑과 인생을 찾아가는 로맨틱 성장 드라마다. 극 중 박보영은 극과 극 성향의 쌍둥이 자매 '유미지'와 '유미래'를 연기했다.
박보영은 1인 2역을 넘어 4역에 가까운 연기를 해야 했다. 작품 속 서로의 삶을 맞바꾸는 상황이 그려진 바, 미래인 척하는 미지와 미지인 척하는 미래까지, 섬세한 결로 각 캐릭터와 상황을 소화해야 했다. 박보영은 대본이 너무 좋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준비 과정부터 난관이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계획형인 사람이 아닌데, 1인 2역 하겠다고 저지르고서는 후회했다. (웃음)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갈까봐 하겠다고는 했는데 막상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한다고 했지?' 싶더라. 그때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와 대사 모든 것들이 너무 좋아서 시작했고, 그다음에 1인 2역에 대한 부담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감독님과 캐릭터를 스케치하면서 이야기한 부분은 '두 사람을 너무 다르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점이었다.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제가 가진 밝은 톤을 미지에게 쓰고, 혼자 있을 때 텐션은 미래에게 끌어다 썼다. 미지와 미래가 서로 생활을 바꿨을 때는 나름대로 다른 티를 좀 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굳이 누구인 '척'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 시청자분들이 헷갈리지 않으실 만한 구별점을 드리려고 했다."
사진: tvN 제공
쌍둥이 설정 탓에 한 프레임에 두 사람이 모두 담겨야 할 때도 있었다. 박보영은 "미지와 미래가 같이 나오는 신은 사고다"라며 고단했던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미지와 미래가 같이 나올 때는 촬영이 두 배로 걸린다. 제가 미지를 하면 미래 대역분이, 제가 미래일 땐 미지 대역이 계신다. 미리 리허설을 하면 대역분이 최대한 똑같이 해주시고 그렇게 맞추며 연기했다. 시간도 그렇고 기술적으로도 까다로워지니까 모두 예민해지시는 경우가 있었다."
"또 한 가지 딜레마는 리허설 이후에 고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제가 보여드린 걸 대역분이 똑같이 해주시고, 그다음에는 제가 그 연기를 이어서 똑같이 해야 했다. 나중에야 '어 이렇게 할 걸'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고칠 수가 없더라. 그게 힘들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연기라서, '내가 그동안 너무 계산 없이 연기했구나' 싶기도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 레벨 업 한 것 같다."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박보영은 '미지의 서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봤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도 돌아보면 큰 일이 아니었음을, 30대의 박보영은 과거를 떠올리며 위로받았다.
"제가 더 공감했던 건 미지다. 미지는 밝은 에너지를 가졌지만 아픔을 극복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지낸다. 저도 스스로 마음의 벽을 닫고 문을 열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다. 아픈데도 아닌 척하는 모습이 과거 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생에 한 번쯤, 누구나 다 겪어가는 과정이 있지 않나. 실패라고 생각한 것들을 나중에 돌아보면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진다. 그럴 땐 주변 사람들이 '그거 진짜 별거 아냐'라고 말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메시지 덕에)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이 풀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1인 2역인만큼 로맨스도 2배였다. 미지로서는 호수(박진영)와, 미래로서는 세진(류경수)과 결이 다른 로맨스를 보여줬다.
"로맨스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님이 욕심을 내셔서 디렉팅도 많이 해주셨다. 호수가 모태 솔로니까 '악수할까 포옹할까'하면서 뚝딱이는 모습을 더 만들어주셨다. 과하지 않게 설레는 포인트를 정말 잘 아시더라. 그리고 (박)진영이가 정말 모태 솔로처럼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식으로 연기를 해줬다. 그 덕을 크게 봤다."
"세진이와의 로맨스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있었다. 미래 자체가 가라앉아 있는 친구인데 세진이는 (미래를) 끌어내려는 게 아니라 '이거 해봐도 되지 않나?', '실패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식으로 위로하고 손을 내밀어준다. 그런 세진의 방식을 보면서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웃음)"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미지의 서울'은 입소문을 타며 매주 자체 시청률을 경신했다. "제가 작품을 통해 느끼는 공감과 위로가 있었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극에 대한 자신감이 정말 컸다"라고 말한 박보영은 "시청률이라는 게 가장 어떻게 할 수 없고, 장담할 수도 없는 부분인데 입소문이 나고 시청률이 올라서 감사하고 기쁘다"라며 시청자들의 사랑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팬 사랑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저도 일을 하면서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팬분들이 저를 응원해 주시고 마음을 표현해 주신다. 누군가가 봐주셔야 제가 다음 스텝을 갈 수 있지 않나. 그런 걱정이 들 때 (팬분들이) 귀신같이 알아채주시고 좋은 말들을 보내주시곤 한다. 제가 정말 위로받았던 팬레터는 따로 보관해 두고 한 번씩 읽기도 한다."
'미지의 서울'을 호평 속에 마무리한 박보영은 차기작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골드랜드' 촬영에 한창이다. 작품은 밀수 조직의 금괴를 우연히 넘겨받게 된 '희주'가 금괴를 둘러싼 아수라장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박보영은 주인공 '희주'로 분한다. 범죄물에 도전하는 박보영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의 연기 변신에 기대가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