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넷플릭스 제공
*본 인터뷰는 '오징어 게임' 시즌3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한국 콘텐츠를 세계에 알린 주역으로 꼽히는 '오징어 게임'이 대단원 막을 내렸다. 피날레가 공개되자마자 호평과 혹평이 뒤섞인 반응이 나왔지만, '오징어 게임'이 콘텐츠 시장에 끼친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시리즈 최초 미국 에미상 수상작이자, 글로벌 OTT 넷플릭스 역대 시청 순위 1위라는 수식어는 당분간 깨지기 어려워 보인다.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황동혁 감독은 6년 동안 그야말로 '자신을 갈아 넣은' 시간을 보냈다. '오징어 게임' 시즌3 공개 후인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 감독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취재진을 맞았다. '오징어 게임'을 시작한 후 치아를 8개 발치, 체중이 59kg까지 빠졌다는 그는 "최근 치아 2개를 빼고 임플란트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한쪽으로만 씹어야 해서 불편하다"라며 건강을 염려하는 기자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세 시즌에 걸친 '오징어 게임'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참가자 숙소 벽에 담긴 이 라틴어 문구로 설명된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 황 감독은 약자부터 소거되는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내일은 너의 차례일 수 있으니 삶을 소중히 하라'는 의미를, 그리고 (어쩌면 너무나 이상적인) '연대의 힘'을 담아내려고 했다.
Q. 시즌1부터 3를 마치기까지 긴 시간 애정을 쏟은 '오징어 게임'을 끝마쳤다. 소감이 어떤가."6년 정도 만에 마무리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정말 제가 '오징어 게임' 안에서 산 것처럼 시간을 보냈다. 하루도 이 작품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오랜 기간 함께한 작품을 떠나보내려니 섭섭한 마음도 있다. 제가 언제 이렇게 큰 사랑과 관심을 받아보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대로 시작해서 큰 부담감과 두려움을 안고 만든 작품이라 이제 짐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허전함도 있지만 시원하고 후련한 마음도 든다."
Q. '오징어 게임' 시즌1이 글로벌 히트를 하며 K-콘텐츠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시즌1의 성공 후 시즌 2와 3을 준비하다 보니 완성도를 비교하는 반응도 많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오징어 게임'은 2009년에 처음 썼던 이야기다. 2019년에 다시 쓸 때까지 계속 이 이야기를 써온 건 아니었다. 작업을 하다가 반응이 안 좋아서 컴퓨터 속에 넣어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작업 기간을 따지면 시즌1이 시즌2와 3보다 엄청 긴 건 아니다. 시즌1은 13개월 정도 썼고, 시즌2와 3은 7개월 정도 작업했다. 프리 프로듀싱 과정에서 대본을 고쳤고, 촬영하면서도 계속 대본을 수정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게 있더라. 시즌1에 비해 시즌2, 3을 만드는 과정이 더 힘들었다."
"완성도를 비교하기엔 어려운 것 같다. 시즌1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려고 하다 보니 기술적으로는 시즌2, 3이 더 낫기도 하다. (시즌1과 시즌2·3은) 톤 앤 매너가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각자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Q. '오징어게임' 시즌2와 3은 통틀어 13부작이다. 시즌을 나눠 공개한 탓에 흐름이 끊긴다는 인상도 받았다. 시즌을 나눈 이유가 있나."무리를 했으면 올해 두 시즌을 모아서 13회를 한 번에 공개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시즌1 이후 4년 만에 후속작이 나오는 거라 너무 텀이 길다고 생각했다. 요즘 트렌드는 긴 시리즈를 선호하지 않는다. 작품을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에 나오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요즘에는 조금만 길어도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서사적으로 봤을 때는 (시즌2와 3 사이) 6개월의 텀이 생긴 게 캐릭터를 보여주는 부분에선 손해가 있었던 것 같다. 캐릭터 서사가 한 번에 달려가면 더 설득력이 생길 텐데 그렇지 못해서 배우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시즌3를 볼 때) 시즌2부터 한 번에 봐주시면 좋겠다는 거다."
Q. 아이들의 게임을 잔혹한 서바이벌로 그려내는 게 '오징어 게임'의 묘미다. 특히 시즌3에서는 다수결 제도가 돋보였다. 매일 진행되는 게임 진행 여부 투표와 희생자를 골라내는 최종 게임에서는 다수결이 의사 결정 수단이다. 다만 그 방식이 폭력적이다. 이런 소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궁금하다."다수결은 가장 민주적인 절차라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인간은 광풍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히틀러도 선거를 통해 집권하지 않았나. 지금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위기에 몰리면서 가짜뉴스나 AI가 판치는 세상 속 선동에 휩쓸리기 쉬운 상황이 된 것 같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다수결 민주주의의 위기 같은 게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에 녹이려고 했다."
Q. 인물들이 대부분 사망하며 끝을 맺은 바, 엔딩에 대한 아쉬운 반응도 있다. 지금의 결말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처음에는 막연하게 해피엔딩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황준호(위하준)와 팀이 섬에 도착해서 성기훈과 합세해 게임을 무찌르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집필하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뭐지. 힘을 합치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있다는 건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성기훈의 여정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을까 고민하다가 이제는 혁명으로 바뀔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치의 양보와 희생도 없는 세상이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갈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욕심을 멈추고 무언가를 희생해서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훈이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내려놓자'라는 메시지를 드리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 결말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
Q. '오징어 게임'이 미국판으로 리메이크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게다가 시즌3 말미 케이트 블란쳇이 등장하면서 미국 배경 '오징어 게임'에 대한 기대감도 있는데, 관련해서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 있나."미국 버전 이야기는 루머다. 공식적으로 저에게 전달이 된 건 없다. 있었으면 넷플릭스 쪽에서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12월에 촬영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저한테 말 안 하고 진행한다고 하면 황당할 것 같다. (웃음) 소문대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판 '오징어 게임'을 만든다면 정말 응원할 것 같다. 저에게 뭔가 이야기하면 기꺼이 도와드릴 생각이다."
"케이트 블란쳇이 나오는 신은 미국에서도 '오징어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마지막에 넣었다. 기훈의 희생으로 한국의 게임장은 무너지지만 게임 자체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이 세상의 견고한 시스템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공유 배우가 딱지남을 했는데, 해외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 배우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에 압도적으로 신을 장악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굴까 하다가 케이트 블란쳇 배우를 떠올렸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셨다."
Q. '오징어 게임' 시즌1으로 지난 2022년 에미상에서 6관왕에 올랐다. 시즌2와 3로도 에미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나."시즌2가 올해 에미상에 제출이 됐을 텐데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 노미네이트 되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이다. 상이라는 게 받으면 기분이 정말 좋지만, 먼 나라까지 갔는데 못 받으면 '내가 여기까지 왜 왔지'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그래도 초청해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가고, 상도 주시면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다. 한 번 (수상) 경험을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안 주셔도 다음 작품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6년 동안 '오징어 게임'을 하면서 여러 감정을 다 경험한 것 같다. 이제는 다 내려놓고 겸허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다."
Q. 긴 시간 몰두한 '오징어 게임'을 정말 떠나보내는 때가 왔다. 혹시 스핀오프나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오징어 게임'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지금은 '오징어 게임'과 관련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그냥 스핀오프처럼 다른 이야기, 가령 '가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하는 그런 가벼운 이야기는 해보고 싶기도 하다. 메시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호기심과 팬심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는 했다."
"기훈이에게 '고생 많이 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제가 너무나 성기훈 씨를 고생의 구덩이에 몰아 놓고 고문한 것 같다. 성기훈의 희생이 시청자분들의 뇌리에 오래 남아서 생각할 거리를 줬으면 좋겠다. 시청자분들도 주변 분들과 ('오징어 게임'에 대한) 생각을 나누시면 좋겠다. 요즘은 너무 갈라치기만 하는 것 같은데, 각자의 생각을 토론해서 상대의 의견도 듣고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