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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재, '성기훈'으로서 다한 쓰임…"'오겜3'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

이우정 기자 ㅣ lwjjane864@chosun.com
등록 2025.07.05 08:00

사진: 넷플릭스 제공

*본 인터뷰는 '오징어 게임' 시즌3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엔딩을 보고 황동혁 감독님의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 이전 시즌이 워낙 큰 성공을 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오래 끌고 가면서 성공을 누리는 것보다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에 놀랐다. 이 사람(황동혁 감독)이 엔터테인먼트 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작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저도 그 결정에 힘을 실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6년 동안 황동혁 감독과 '오징어 게임'을 이끈 이정재는 기훈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엔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황동혁 감독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이정재와 만나 '오징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 기간을 포함해 총 6년. '성기훈'으로 살아온 이정재는 "팬들이 주신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했다"라며 '오징어 게임'을 보내는 소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항상 작품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초반에는 캐릭터 잡기가 힘들다. 어떤 방향으로 연기를 하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촬영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서 캐릭터에 익숙해지지 않나. 그럴 때 '내가 작품에 많이 빠졌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끝부분 촬영할 때는 촬영을 더 오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서 시원하다는 마음보다는 '이제 끝인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난해 말 공개된 시즌2와 최근 베일을 벗은 시즌3는 한 번에 촬영했다. 서사 상으로도 '성기훈'(이정재)이 게임이 되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바, 이정재는 시청자 입장에선 호흡이 끊기는 상황에도 극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기훈의 선택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끝을 맺기까지, 이정재는 '성기훈'으로 쓰임을 다했다. 하지만 엔딩에 대한 아쉬운 반응도 많았다. 최후 게임까지 살아남은 기훈이 참가번호 222번을 단 준희(조유리)의 아이에게 우승자리를 넘겨주고 죽음을 택하는 엔딩이 허무하다는 반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6년을 했지 않나. '우리는 이런 의도로 만들었으니까 그 의도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세요' 하는 마음이 크다. (황동혁 감독이) 여러 버전을 고민하고 (엔딩을) 고르는 과정도 굉장히 고심이 깊었을 거다. 물론 기훈이가 사는 쪽으로 선택했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황동혁 감독이) 지금의 엔딩을 잘 선택하신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시즌2와 3는 잔혹한 서바이벌에서 최종 우승자가 돼 456억 원을 갖게 된 기훈이 게임을 벌이는 이들을 처단하고 참가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게임에 발을 들이며 펼쳐진다. 시즌2 말미, 폭동을 일으킨 기훈의 눈앞에서 절친 정배가 살해당하고, 이후 기훈은 또 한 번 변화를 겪는다. 점점 피폐해져가는 정신으로 게임을 이어가는 기훈은 실제로도 말라가듯 보였다. 이정재는 그런 기훈을 표현하기 위해 1년 동안 다이어트로 고생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지지와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더 하려고 했는데 그 무엇 중의 하나가 외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오징어게임의 콘셉트는 '밥은 먹인다'다. 김밥도 주고 옛날 도시락, 빵도 나온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과연 기훈이가 밥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받고 패닉에 빠지면 신체가 점점 마른 오징어처럼 쪼그라들지 않나. 그런 걸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전체적으로 10kg 정도 감량한 것 같다. 즐거운 회식도 마다 하며,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로 못하고 밥차도 거의 못 먹었다. 식사 준비해 주시는 분께 그날 재료로 쓰는 채소를 좀 쪄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도시락 용기에 세 끼 분을 싸주셨다. 그걸 받아서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 먹고, 남은 하나는 숙소로 가져가 다음 날 아침에 먹었다. 중반부부터는 세 개를 두 개로 줄이고, 마지막 신 찍기 두 달 전부터는 도시락 하나를 세끼에 나눠서 먹었다."
시즌3 후반부, 기훈은 준희의 등번호 222번을 달고 게임에 참가하게 된 아기까지 챙겨야 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 모습의 더미를 품에 안고 촬영한 이정재는 "되게 묘한 경험을 했다"라고 떠올렸다.

"완성된 모습에서는 CG로 교체가 됐지만, 인형 무게가 실제 신생아 무게와 똑같아서 현실감 있었다. 무게감도 있고 크기도 정말 아기 사이즈라 아주 디테일했다. 물론 처음 촬영할 때는 좀 어색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같이 있으니까 정이 들더라."

최종 게임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기와 아기 아빠 명기(임시완), 셋이서 생존 게임을 벌였다. 자식을 죽이면서까지도 스스로 살고 싶어 한 명기와, 그런 명기를 처리하고 자신마저 죽음을 택하며 아기를 살린 기훈. 처절한 서사를 깊게 이해시킨 건 배우들의 호연이었다.

"상대방 연기를 구경하는 게 '오징어 게임'의 큰 재미 중 하나였다. 거의 다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배우들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저 배우는 어떻게 연기할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곤 했다. 배우들과 연기하면서 놀랄 때가 많았다. 전에 봤던 (상대 배우의) 작품 속에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 이상을 느낀 현장이었다."
이정재는 기훈을 연기하며 철학적 질문에 놓였다. 기훈의 선택에 대한 이해도 그런 고민 속에서 시작됐다. '오징어 게임'이 던진 화두는 이정재의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든 생각이 '누구나 다 죽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든 죽는 건 마찬가지지 않나. 어쩌면 '잘 죽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잘 죽는 것은 뭔가' 하면 내가 나를 돌아봤을 때 양심의 가책이 없는 편안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기훈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 역시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다 죽기를 원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중 하나가 됐다. "해외 어딜가도 신기할 정도로 알아봐 주신다"라며 인지도를 체감했다고 말한 이정재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주역 중 한 명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언급했다.

"'오징어 게임'이 한국 콘텐츠로 여러 기록을 세웠다는 건 큰 의미인 것 같다.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게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을 안 봤더라도 그런 작품이 있다는 건 다들 아시더라.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나날이 오르고,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생기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문화 산업뿐만 아니라 여러 사업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국가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더 바랄 게 없다."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보실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 계속해서 시청자들에 대한 폭을 넓히는 것이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의 꿈이다. 예전에는 할리우드에 가는 게 꿈인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할리우드 안 가도 그 이상으로 꿈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현상이 이어지길 바란다."

'오징어 게임' 흥행 후, 스타워즈 세계관 '애콜라이트'에 합류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정재다. 여전히 해외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 이정재는 "제안은 많이 받고 있는데 아직 결정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촬영 중인 차기작 tvN '얄미운 사랑'을 잘 마무리하면 영화 제작자로서의 행보도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매 작품에 열과 성을 다할 뿐이라며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려는 태도도 덧붙였다.

"사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연출 준비도 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벌써 준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가 연출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내서 작가분과 함께 제작하려고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진행이 꽤 많이 된 상태다. 뭐가 먼저 촬영이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 찍고 있는 거 잘 마무리하고 결정할 것 같다."

"제가 늘 성공한 작품과 성공하지 못한 작품을 비교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면서 '이것이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생각과 고민만 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이제 진짜 끝이다. 그러니까 아쉬워만 할 수도 없다. 새로운 작품이 있으니 거기에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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