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3'에서 노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규영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노을이 견고하게 잘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필요했어요. 되게 버석하고, 절망적인 건조함을 너무 표현하고 싶어서 체지방도 많이 태웠던 것 같아요. 엄청 대단한 건 아니지만, 당시 체지방량이 7.9kg이었어요. 그리고 골격근량이 25.2kg. 엄청난 건 아닌데 그만큼 스킨을 얇게 만들었어요. 기계가 잘못됐나 싶은 수치이긴 한데, 수치로는 그렇습니다."
배우 박규영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노을 역을 맡았다. '오징어 게임' 시즌3은 다시 참가한 게임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기훈(이정재)과 정체를 숨긴 채 게임에 숨어들었던 프론트맨(이정재), 살아남은 참가자들, 그리고 게임을 둘러싼 핑크가면들, 형사(위하준), VIP들 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그 속에서 노을은 게임 속에서 핑크가면으로 임한다. 참가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려 그들의 목숨을 바로 끊어주려 정조준하는 인물에서 게임 밖에서 본 적 있던 참가자 박경석(이진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 인물이다. 노을은 북에서 가족을 두고 왔고, 남에서 아무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 노을에게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면, 북에 두고 온 딸을 혹시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 마음이 경석과 그의 딸을 향할 때, 마주침이 생긴다. 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박규영은 자신의 신체를 '버석'하게 만들며 남다른 선택을 했다. 화장기 없는 인터뷰 당일의 박규영은 기자들을 향해 인터뷰에 앞서 먼저 고개를 숙였다. 스포일러 논란에 대한 깊은 반성을 보이며 인터뷰가 시작됐다.
'오징어 게임3'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노을은 '오징어게임' 시즌3 속에서 '핑크 병정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였다. 동력의 중심이 필요했을 것 같다.
"노을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다 설명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서사를 겪으며 삶에 대한 희망이 전무한 인물이다. 단 한 가지, 혹시나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작은 희망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북에 가족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과 절망감도 짙게 노을을 지배한다. 그래서 '경석을 구해야겠다'라는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비쳐 아이에게 아빠 경석(이진욱)를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동력으로 게임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Q. 목소리 톤도 굉장히 낮았고, 표현이 적은 인물이었다. 거기에 가면까지 써서 표정까지 지워야 했다. 노을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감정을 드러낼 의지도 없고,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황동혁) 감독님께서도 노을은 누구에게도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인물이라고 하셨다. 조금 더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하며 시선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려 했다. 목소리는 써본 적 없는 톤이라 지속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한 번 감각이 생기면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얼굴은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몸에서부터 견고하고 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근육을 좀 키웠다. 노을이 가진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외적인 버석함, 피부 질감, 눈빛, 시선 등 이런 것부터 정리했던 것 같다. 얼마나 절망적이고, 극단의 어두움에 갇혀있는 인물인지를 생각하려 했다."
'오징어 게임3'에서 노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규영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이름 때문인지, 북에서 왔기 때문인지, '오징어 게임' 시즌 1 속 캐릭터 강새벽(정호연)과 강노을이 혈연이 아니라는 의혹도 있었다.
"(황동혁) 감독님께서 작명하실 때, 새벽은 가족을 찾고자 하고, 지키고자 하는 인물이고, 노을은 모든 불씨가 꺼져버린 그런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작명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둘은 실제적인 혈육이라는 것보다 상징적인 표현에 의해 이름을 지어주신 것 같다."
Q. 노을은 버석한 얼굴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인물로 등장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는 경석을 구하는 것부터 불을 지르는 등 굉장히 과감한 선택들을 한다.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고 임했나.
"부대장님(박희순)과의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노출되지만, '노을이와 같이 삶에 아무 희망 없는 사람을 고통 없이 편하게 보내줘라, 그게 너의 임무다'라는 말에 노을이는 게임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다. 삶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공감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노을에게 영혼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고통까지 용납되지는 않았을 거다. 장기 밀매가 이루어지고, VIP들에게 오락을 주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람들은 노을이에게 용납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이 게임을 중단시키기 위해 불태워버리는 게 노을이 다운 선택 같았다."
'오징어 게임3'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리즈였다. 촬영 현장을 비롯해서 퍼레이드하고, 해외 홍보 일정 등도 소화하며 느낀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이미 팬덤이 확고하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다. 그 안에서 제 몫을 해내려면, 제가 얼마나 중심이 단단해야 하는지를 더 배우기도 했고, 그렇게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해 박규영이 얼마나 더 진솔하고, 겸손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할지를 느낀 지난 몇 년 같다. 제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이것을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 감사한 건 수천 번 이야기해도 부족하다."
Q. 해외 인터뷰에서 영어도 굉장히 잘하더라.
"사실 우리는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교감을 하지 않나. 그것처럼 해외에 나가서 인터뷰할 때, 공통된 언어로 교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작은 뉘앙스로 살짝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고, 디테일한게 표현될 수도 있지 않나. 어릴 때 해외 경험이 살짝 있어서 기본적인 소통과 문장 구사, 아주 간단한 생존 문장에는 큰 문제가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다만, 작은 뉘앙스를 설명할 때 필요한 단어나 어휘는 추가적으로 공부해 익히기는 했다. 뉘앙스를 너무 전달하고 싶었다."
'오징어 게임3'에서 노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규영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되고 시즌3이 공개되기 전, 배우 이진욱이 핑크 병정 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며 '스포일러' 논란이 있기도 했다.
"지난 몇 달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다. 눈을 보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직접 뵙고 말씀드리기 전까지 뭔가를 마주할 용기를 찾지 못한 것 같다. 넷플릭스 측에서는 '다음부터는 실수 없게 해달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노을의 이런 서사를 만들어주신 (황동혁) 감독님이나, 그 서사를 잘 표현하게 도와준 제작진, 그리고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분들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다. 죄책감이 컸고, 자책도 많이 했고, 책임감에 대한 통찰도 많이 했다."
Q. 단단한 배우가 되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통찰하는 편인가. 루틴이나 습관이 있을까.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제 안에서 끌어내는 감정들을 동력으로 연기하다 보니, 객관적으로 오늘의 나는 어땠고, 요즘의 나는 어떻고, 과거의 나는 어땠고. 이런 걸 매일매일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발레나 명상은 캐릭터에서 바로 나로 돌아오기 위한 루틴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발레는 주 2회, 헬스는 주 3회 간다. 저만의 별거 아닌 루틴인데 박규영으로 하는 루틴인 거다. 그런 게 없으면 '뭐하지' 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3'에서 노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규영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요즘의 관심사도 궁금하다.
"영화를 매일 한 편씩 보고 잔다. 그런데 요즘에 보는 영화의 장르가 대부분 스릴러, 호러인 것 같다. 한 감독님의 작품을 파서 보기 시작하면, 그 감독님의 서사를 다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유전' 등의 작품을 쭉 돌아보는 거다. 최근에 '퍼니 게임'이라는 작품에 빠져서 미카엘 하네케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고 있다. 쉽지 않은데 되게 좋다. '하얀 리본'도 좋아하는 작품이다. 신선한 시각이 있는 작품들이다.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들이다."
Q. 지난 2016년 조권의 뮤직비디오 '횡단보도'를 통해 데뷔해, 내년이면 벌써 데뷔 10년 차 배우가 된다. 어떤 길로 나아가고 싶은가.
"저는 명확하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겠습니다'라는 구체적 목표를 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더욱 강하게 자리 잡는 건 '지혜로운 배우'가 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다. 제가 생각할 때 지혜로운 판단을 하고, 사람으로 좋은 면모를 갖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박규영은 인터뷰 내내 눈을 맞추려 노력했다. 그 눈 맞춤에 진심이 전해진다고 믿는 듯이. 매일매일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고 바라보며, 그는 사람과 사람의 온도를 믿는다. 그 믿음이 더 인간적인 '노을'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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