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넷플릭스 제공
*본 인터뷰는 '오징어 게임' 시즌3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가수 겸 배우' 수식어를 가진 이 중에 첫 시도부터 글로벌 스타로 거듭난 배우가 또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와 3의 히로인으로 나선 조유리 얘기다. 국내 대중에겐 그룹 아이즈원 출신 솔로 가수로 익숙하지만, 해외 시청자에겐 배우로 눈도장을 찍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자신만의 목적을 품고 다시 참가한 게임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기훈'(이정재)과, 정체를 숨긴 채 게임에 숨어들었던 '프론트맨'(이병헌), 그리고 그 잔인한 게임 속에서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마지막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조유리는 잘못된 투자 정보를 믿었다가 거액을 잃고 게임에 참가하게 된 명기(임시완)의 전 연인 '준희' 역을 맡았다.
'오징어 게임' 시즌3를 무사히 마친 조유리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준희는 임신한 상태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 안에서 아기 아빠 '명기'와 재회하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전 연인과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잔혹한 게임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다행히 그의 곁엔 온정 넘치는 인물들이 함께한다. 게임을 막고 싶어 다시 돌아온 '성기훈'(이정재), 전직 군인 출신 트렌스젠더 '조현주'(박성훈), 모성을 가진 '장금자'(강애심)까지, 여러 인물이 임산부 준희를 배려하며 그의 생존을 돕는다.
준희는 사회적 약자 설정 탓에 자칫 수동적인 인물로 비치기도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 준희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항상 경직된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유리는 그런 준희를 누구보다 애틋하게 여겼다.
"작품 공개되고 저에게 주신 반응들은 거의 다 봤다. '준희의 표정이 하나'라는 반응도 애정을 담아 주시는 피드백인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음에 연기할 때는 피드백을 받아들여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양분 삼아서 더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자칫 수동적인 인물로 비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준희가 여러 인물에게 도움을 받는 건 맞으니까. 다만 준희를 연기한 입장에서는 너무 민폐처럼 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고마운 마음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마음에선 준희의 행동이 이해된다. 누군가의 호의를 거절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조유리는 20대 중반 나이에 미혼 임산부 설정을 맡았다. 특히 시즌3에서는 출산 신과 모유수유 신까지 소화하며 도전에 나선 그다. 부담스러웠을 연기지만 조유리는 "배우로서 발걸음을 떼는 데 있어서 좋은 도전이라고 느꼈다. 부담감보다는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라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임산부 역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해내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아무래도 경험해 보지 않은 부분이라 어색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출산 장면 준비하던 초반에는 설정을 세세하게 정해 놓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나 주변 경험담을 들어보니 막상 호흡법을 배우고 들어가도 출산할 때는 무아지경이라고 입을 모아 말씀하시더라. 그냥 머리를 비우고 무아지경을 구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준희는 최종 게임 직전, 다섯 번째 게임에서 죽음을 맞는다. 다리 부상에 출산 직후인 그에게 단체 줄넘기는 생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게임이었다. 아기를 '기훈'에게 맡긴 그는 아이의 생존을 확인한 후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후 최종 게임의 마지막 단계, 살아남은 이는 '기훈'과 '명기', 그리고 주최 측의 변덕으로 엄마 준희의 참가 번호 222번을 받은 아기까지 셋이었다. 명기는 살기 위해 자기 아이를 죽음에 몰려는 잔혹한 모습으로 '역대급 빌런' 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넷플릭스 측의 철저한 보안으로 뒤 대본을 받지 못한 조유리는 준희였던 때를 떠올리며 "명기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게임은 정말 충격이었다. 준희가 죽은 뒤 내용은 대본을 받지 못했다. 방송을 보면서 내용을 확인했는데 정말 놀랐다. 그동안 (임)시완 오빠랑 같이 인터뷰할 때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하셨는데 '왜 그렇게까지 사과하시지'했다.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너무나 충격이었다. (명기가) 너무너무 밉지만 잘 표현해 주셔서 '오빠도 고생 많이 하셨겠구나' 싶었다. '오징어 게임3' 공개되고 보자마자 오빠에게 '연기 정말 멋지다'라고 문자 드렸다."
어쩔 수 없이 엮이는 아이 아빠 '명기' 역의 임시완과는 촬영장뿐만 아니라 작품 홍보를 함께 다니며 가까워졌다. 게다가 가수 출신 배우라는 공통점까지 있었다. 임시완과의 호흡을 묻는 말에는 "나도 이런 선배가 되어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며 웃어 보였다.
"연기할 때는 장면에 이입하면서도 해야 할 걸 생각하면서 연기한다. 그런데 명기와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신에서는 '내가 정말 몰입했구나'라는 걸 느꼈다. 신이 끝난 후에도 눈물이 많이 났다. 말로만 듣던 '감정이 주체가 안 된다'라는 걸 처음 느꼈다. 정말 몰입됐다. 나도 한 단계 성장했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가수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한 생각은 아니지만, (임)시완 오빠의 연기와 센스, 현장에서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같이 지내면서 연기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나중에는 후배를 잘 챙기고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오징어 게임'은 조유리에겐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일 수밖에 없다. 이전에 웹드라마 출연 경험이 있지만, '오징어 게임'은 배우로서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은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흥행한 시리즈의 메인 히로인을 연기했다. '오징어 게임' 전후 체감한 변화는 확실했다.
"가장 많이 체감한 건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 알아봐 주시는 거다. 아이돌 활동할 때는 10대, 20대 친구들 위주로 알아보셨다. 그 이상 세대에서는 저를 몰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오징어 게임' 공개된 후에는 다양한 세대 분들이 알아봐 주시더라. 신기했다. 이게 '오징어 게임'의 힘이구나 느꼈다."
"프로모션차 뉴욕에 갔을 때는 팬분들이 저를 '준희'로 불러주시더라. 저를 조유리가 아니라 준희로 봐주시는 걸 보고 '진짜 준희의 팬분들이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마음속으로 '너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야'하면서 준희를 떠올리곤 했다."
조유리는 이제 배우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갈 예정이다. 물론 가수 활동과 함께다. 아직은 초보 배우지만 스스로의 강점을 쌓아가며 더 성장할 모습을 예고했다.
"그동안 내 장점이 무엇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시청자분들이 눈빛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내 강점이 눈빛이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배우로서 무기가 무엇이냐 물어보신다면 '눈빛'이라고 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준희를 내려놓은 조유리는 차기작으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러브콜이 많지 않다"라면서도 차기작을 확정한 그는 새 드라마 '버라이어티'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 폭을 넓혀갈 예정이다.
"연기를 하면서 (조유리로서)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재밌었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내가 도전과 시도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저에 대해 더 알아간 시간이었다."
"앞으로 주어진 차기작을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차기작에서도 준희 역만큼 도전을 한 것 같다. 강렬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