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세계가 멸망했다. 살아남는 법은 두 가지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 혼자 살아남는 법, 혹은 다른 사람들과 다 같이 살아남는 법.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당신의 선택을 묻는다.
지구가 멸망했다. 지구 밖 먼 곳 어딘가에서 ’아프리카TV'를 보듯 ‘성좌’들이 실행 불가능할 미션을 해결해 가는 ‘인간’들을 ‘도깨비’의 중계를 통해 본다. 미션을 해결하면 별풍선을 쏴주듯 코인을 주고, 자신이 응원하는 ‘인간’을 후원하기 위해 ‘배후성’을 자처하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 속 상황이다. 10년 동안 연재된 웹소설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독자는 ‘김독자’ 단 한 명뿐이다. 왜냐, 조회수가 ‘1’이었으니까. 그 소설을 10년 동안 놓지 않은 김독자는 현실에서 늘 주눅이 들어 살아왔다. 한 번도 최고의 점수를 받은 적이 없었고, 친구 관계 속에서도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한 번 연 문을 다음에 나오는 사람을 위해 잡아줄 줄 아는 사람이고, 지하철에서는 가방을 앞으로 매 보이지 않는 뒷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김독자에게 마지막 화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마지막 화가 연재되던 날이자 김독자가 처음으로 작가에게 ’저는 이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항의 메일을 보낸 날, 소설 속 처음 상황처럼 김독자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동호대교를 지나던 그때, 소설은 현실이 된다. 세상은 멸망했고, 도깨비에게 해결해야 할 미션이 적힌 시나리오를 받게 된다. 그 첫 시나리오는 하나 이상의 생명을 죽여라. 김독자는 옆 칸에서 지체없이 남의 목숨을 빼앗는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의 모습도 보게 된다. 이 순간, 김독자는 유일하게 이 멸망한 세계를, 소설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이 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아포칼립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본 것과 조금 다른 지점으로 전개된다. 가족을 위해 혹은 살려야 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기보다, 좀 더 세상이 멸망한 지금, 이 현실에 포커스를 맞췄다. 김독자는 직면한 상황 속에서 늘 고민하고,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스스로 강해지고,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통쾌함을 더한다. 그 과정은 게임을 하는 듯하고 있는 참여감을 더한다. 관객들도 독자가 하는 선택에 힘을 싣게 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전지적 관객 시점'‘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달성해 내고, 코인으로 민첩성을 강화할지 근력을 강화할지 등을 선택한다. 상황은 계속 휘몰아친다.
휘몰아치는 상황을 몰입하게 하는 것은 비주얼과 음향이다. 본 적 없는 어룡, 화룡, 도깨비 등 다양한 크리처의 압도적인 비주얼부터 세상이 무너지는 상황까지 ’전지적 독자 시점‘은 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를 설명하듯 상상력을 거침없이 극장 안으로 데려온다. 김독자가 몸으로 부딪치고, 온 힘을 다해 칼을 쓰고, 유중혁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스킬 등은 그 질감과 진동까지 전하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배우들의 힘이 크다. 안효섭은 점점 몸에 맞춰지는 양복처럼, 싸워본 적도 없지만 이미 진 것 같은 독자의 초반부터 코인으로 능력치를 올리며 상황을 뚫고 나가는 성장사를 고스란히 전한다. 이민호는 소설 속 ‘잘생긴 외모의 유중혁’을 그 자체의 존재감으로 전하며, 자신만의 주인공 서사를 써 내려간다. 여기에 김독자의 동료로 등장하는 채수빈, 신승호, 나나, 권은성 역시 나이를 떠나 캐릭터 그 자체로 자이를 채운다. 특히, 지하철 3호선 역사에서 만나게 되는 박호산, 정성일, 최영준은 각자의 비릿한 느낌으로 몰입감을 높인다.
원작과 달라진 일부 부분들에 공개 전부터 여러 의견이 엇갈렸지만, 스크린에서 확인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뜨거웠다. 해본 적도 없는데 뒤처져 있었던 것 같은, 주눅이 들어 있어도 그 속에 뜨거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너, 나, 우리의 성장 서사를 가장 극도의 쾌감으로 느낄 기회를 준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7분. 7월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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