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 사진 : CJ ENM,외유내강 제공
선지(임윤아)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낮에는 맛있는 빵을 만드는 파티쉐의 꿈을 가지고 '정셋빵집'을 운영하고 있고, 밤에는 새벽 2시에 깨어나 악마가 된다. 악마로 깨어나긴 하지만, 사실 별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하고 아빠(성동일)와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놀이터에서 놀고, 편의점에서 빵을 사 먹는다. 그러면서 틈틈이 사람을 괴롭힐 궁리나 한다.
길구(안보현)은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외국에서 태어난 조카를 보러 떠난 집에 나 홀로 지내고 있다. 길구는 사실 길가에 버려진 유리병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유리병을 주워서 조심스레 분리 수거통 위에 올려두는 섬세한 사람, 그런 사람이 길구다. 길구는 자신의 윗집으로 이사 온 선지에게 묘한 순간에 첫눈에 반한다. 그때부터 길구는 선지를 남몰래 관찰한다. 하지만, 그 끝은 결국 선지 아빠에게 들켜버리는 것. 그에게 선지가 새벽 2시만 되면 악마로 변한다는 비밀을 듣게 된 길구는 선지를 보호해 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영화 '엑시트'로 지난 2019년 여름, 942만 관객을 매료시킨 바 있는 이상근 감독이 자신과 더 닮아있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난다. '엑시트'가 화려한 데뷔작이었다면, '악마가 이사왔다'는 그렇게 자신을 아는 관객들에게 '사실 전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자기 고백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앞서 알려진 것처럼 '악마가 이사왔다'의 촬영 장소부터 이상근 감독의 동네이지 않은가. 그만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사실 화려한 데뷔작을 선보였지만, 이상근 감독 최고의 장점은 살아가면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것을 발견하는 눈에 있다. 백수 아들(조정석)의 등을 후려치면서도 그의 가르마 방향을 두고 고심하는 엄마(고두심)의 모습에 사랑이 담겨있듯 말이다. 길구가 선지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사실 영화 속에서 길구는 한 번도 선지에 대한 마음을 먼저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다. 선지랑 마주칠까 집을 나서는데도 이유가 필요하다. 길구는 하루는 냉장고에 있는 1,000ml짜리 우유 한 통을 마시고 빈 우유각을 만들어 분리수거한다며 나서고, 또 다른 날에는 굳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선다. 악마일 때의 기억이 없는 낮의 선지에 인사할 때면 '안녕' 손짓과 함께 꾸벅 고개를 기울이는 그 모습에 선지를 향한 마음이 쏟아질까 염려하는 길구의 진심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에 따라 자연스레 굽은 아빠(성동일)의 뒷모습에 사랑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늘 작은 디테일이다.
작품 속 묘한 대조는 캐릭터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 한다. 낮의 선지는 맛있는 빵을 만들고, 악마가 된 밤의 선지는 편의점에서 빵을 허겁지겁 먹어댄다. 낮과 밤의 선지는 해와 달처럼 존재한다. 또 악마는 길구를 빛나게 한다. 이른바 극단적 테토녀(남성 호르몬의 여성이라는 뜻)가 더욱 에겐남(여성 호르몬의 남성이라는 뜻)을 강조하듯 말이다. 영화 속에는 선지와 길구의 시그니처 모습이 등장하는데, 내지르는 악마의 웃음과 놀라는 '오' 표정의 길구까지도 묘한 대조로 볼거리를 더한다. 이를 완성한 임윤아와 안보현의 연기는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무엇보다도 무해한 작품이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떠올렸지만, 보고 난 후에는 수많은 장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상근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좋은 사람’. 그들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용기를 내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라고 이야기했고, 그 말 그대로가 '악마가 이사왔다'에 담겨있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소절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이름 가진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길을 찾아간다. ‘악마'가 이렇게 '힐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악마가 이사왔다'를 보고 일어서며 최고의 반전이다 싶었다. 가족, 드라마, 코미디, 액션, 로맨스, 그리고 오컬트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극장을 나서는 길에 '힐링'으로 가장 크게 다가온다. 상영시간 112분. 12세 이상 관람가. 오는 8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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