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상근 감독 / 사진 : CJ ENM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지점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6일 진행된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언론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한순간 영화 '노팅힐'(?) 같은 분위기가 된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인사 때 이상근 감독이 "여기 계신 기자분들 중 제 친구가 있다. 제 대학교 친구인데, 영화 홍보 현장 때마다 만난다. 그 친구는 저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저는 바라보며 마음의 의지를…준영아"라고 친구의 이름을 외쳤던 순간이었다.
이상근 감독 그 자체의 모습이 그 순간에 담겼다. '악마가 이사왔다'를 비롯해 '엑시트', 그리고 그 이전에 이상근 감독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간만에 나온 종각이' 등의 작품들에도 담겨있던 모습이다. 각기 다른 제목과 스타일의 영화 속에서 이상근 감독은 백수 아들을 구박하면서도 가르마 방향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마에게 있었고, 좋아하는 여자와 스칠 수나 있을까 생각하며 우유 1,000ml를 단번에 마셔 분리수거라는 변명을 만드는 길구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영화 홍보 현장 때마다 '제 친구'를 만나는 순간 역시 소중했다. 그 마음은 그의 말에 고스란히 자리했다.
그런 연유로 그가 부른 그의 '친구'이자, 대학교 영상학과에서 함께 했던, 허준영 영상 기자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등장해 큰 사랑을 받았던,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상근이'보다 알려지지 않았던, 감독 지망생인 그를 놀린 시간 속에 있던 친구다. 덕분에 그의 블로그 '개가 더 유명해 슬픈 남자'를 기억하는 두 사람과 함께 '악마가 이사왔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새벽 2시만 되면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를 보호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길구(안보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가족,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액션, 그리고 오컬트까지를 아우르며 힐링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Q. '악마가 이사왔다' 언론시사회 당시,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친구의 이름을 꺼냈다. 갑자기 분위기가 '노팅힐' 속 기자회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근 감독(이하 '이') "너무 떨릴 때, 시선을 한곳에 두면 떨림이 덜해진다. 허공을 보기보다는 친근한 모습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저는 안 보고 윤아 씨만 찍고 있긴 했다. 영화를 시사할 때마다 용기도 주고 그런 친구다. 반가워서 그랬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공식 석상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밝히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다고도 생각하는데, 무슨 용기인지 모르겠다."
Q.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된 입장은 어땠나.
허준영 영상기자(이하 '허') "다른 분들도 굉장히 애틋하다고 하셨다. 저도 '상근이 형'이라고 애틋하게 불렀어야 그 시퀀스가 마무리되는 건데. 그 생각을 나중에야 하게 됐다."
이 "이 친구가 '상근이 형, 파이팅' 하는데 약간 전날 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저로 아름답게 끝날 수 있던 모먼트가 작당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되어서 조금 부끄럽긴 했다."
허 "애틋하게 불렀어야 했는데. 꼭 지나고 후회하는 것들이 있지."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상근 감독 / 사진 : CJ ENM
Q. 대학교 시절부터 오랜 시간 이상근 감독님을 곁에서 봐왔다. 어떤 분이라고 생각했나.
허 "갑자기 (이)상근이 형이 대학교 OT 가는 버스 안에서 장기자랑을 할 때 '텔레토비' 주제가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가수 박정현 콘서트를 갔을 때도, 박수를 엄청 열심히 친다고, 무대에 불려 나갔었다. 그때 박정현이 사인 포스터랑 모자랑 교환하자고 했는데, 정작 (이)상근이 형이 '아버지 모자라서 못 드린다'고 했었다. 남달랐다. 그렇게 일상에서나 영화에서나 투박한 듯, 섬세한 부분이 있다. 그게 늘 궁금했다. '(이)상근이 형은 늘 계산하는 걸까, 아니면 계산하지 않는데 그렇게 보이는 걸까.' 노림수가 있는 귀여움인가, 순진함인가, 투박함인가."
이 "고도의 여우는 곰과 구분할 수 없다, 이런 건가."
허 "그게 구분이 잘 안된다."
Q. 스스로 생각할 때는 계산된 지점인가, 혹은 계산되지 않은 천재성인가.
이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100% 순진한 것보다 엉뚱함은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고도의 계산으로 뭔가를 해나가는 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웃기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코미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대부분 저에게서 생성된 것 같다. 순진한 건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있다. 그냥 좀 선하게, 선하게 하려고 하는 것."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 사진 : CJ ENM
Q. 계산되지 않은 것을 하신다고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굉장히 촘촘한 느낌이다. '악마가 이사왔다'의 바뀌기 전 제목인 '2시의 데이트'도 새벽 2시의 데이트가 낮 2시의 데이트로 바뀌기까지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 속 웃음 타율 역시 높다.
이 "조금 다른 지점이다. '이렇게 하면 웃기겠지'라는 계산보다는, 그냥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넣는다.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이너한 코미디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말장난이나 상황적인 해프닝 속 뚝딱거림보다, 제가 주변에서 겪었던 일들이나, 지켜본 시선에 코미디가 있다. 웃음 타율이 높다고 하지만, 성공하는 만큼 실패도 많이 하는 것 같다."
Q. 사실 이 작품은 '엑시트' 전에 썼던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서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엑시트'가 942만 명이라는 굉장히 '대박'을 기록한 작품 아닌가. 이후에 많은 제안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같이 데뷔하자고 약속했던 '악마가 이사왔다'의 손을 잡았을까.
이 "원제가 숫자 '2'로 시작하는 '2시의 데이트'였다. 그래서 '이름순'으로 파일을 정렬하면 맨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파일이 꽤 많다. 그런데, 늘 맨 위에 올라가 있는 이 친구가 눈에 계속 밟혔다. 그래서 같이 데뷔하자고 약속했던 이 시나리오를 다시 열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다시 열어봤다. 컴퓨터 안에서 무슨 증식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이상근이 느꼈던 것과, 지금의 이상근이 느끼는 것은 좀 다르더라. 왜 이 작품으로 데뷔하지 못했는지도 깨닫게 되었고, '다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롭게 구성도 넣어보고, 이 친구와 그때 했던 약속을 지켜보자는 마음에서 도전했던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때 이 작품을 쓰면서 데뷔하는 나의 모습을 여러 번 상상했었다. 그 수많은 모먼트가 담겨있다. 이 작품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것에는 그 모먼트 때문에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저를 아시는 분이면 제가 '엑시트'를 만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을 거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상근 감독 / 사진 : CJ ENM
Q. 이상근 감독을 아는 분으로, 과거 '엑시트'를 보고 놀라셨을까.
허 "'엑시트' 때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너무 위태위태한 느낌이었다. '엑시트'는 약간 게임처럼 진행된다. 시퀀스마다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주고, 그걸 찾으면,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 위태로움을 내가 같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훌륭하게 성공해서 '너무 잘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위태로웠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을 게 너무 보였다. '엑시트'에서 매달려있는 용남(조정석)이와 의주(윤아)가 그 캐릭터이기도 하고,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상근이 형으로 보였다. '인간 이상근'이 올라가고 있는 거다. 그동안 (이)상근이 형이 찍어온 영화를 다 보면서, 모든 영화에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어떤 작품을 보면 '이건 뒤쪽부터 쓴 시나리오인가'라고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악마가 이사왔다'도 마지막을 위해 써나간 건 아닐까 싶었다."
이 "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엔딩을 확실히 정해놓고 가는 스타일이다. 엔딩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엔딩이 무조건 있어야 하고, 중간 에피소드들은 오히려 나중에 쓰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빌드업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뿌려놓고, 복선 회수까지 다 한 다음에 중간을 구축한다. 그게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엔딩까지 달려갈 때, 목적지를 확실하게 바라보며 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달릴 수 있다. 엔딩의 감정을 제가 받아들이고, 이렇게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시작이 되지 않는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 사진 : CJ ENM
Q. 오랜 기간 동안 영화를 보고, 만지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뒤적였을 것 같다. 그러면서 보였던 배우 윤아가 선지로, 배우 안보현이 길구로 만족스러웠던 순간이 있을까.
이 "요즘에도 거의 하루에 한 번씩 그냥 영화를 훑어본다. 진짜 지겹게도 봤지만, 이제는 나노적으로 한 번씩 본다. 예전에는 서사나 상황적인 면을 봤다면, 지금은 되게 잘게 분석하며 한 번 본다. 저는 윤아 배우를 많이 봐오면서 '아름다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진짜 아름답다, 내가 이런 분이랑 작업했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다. 공감이 안 될 수도 있는데, 길구가 학원가는 선지에게 '요즘 세상이 무서우니까, 올 때 연락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윤아가 딱 돌아보는 순간에 그 눈빛과 '이 오빠도 나한테 생각이 있구나'라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말한다. 저는 그때가 이 영화 속에서 배우 윤아가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모먼트였다. 저만의 모먼트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안보현이 정말 웃겼던 포인트가 있었다. 정셋빵집에서 낮의 선지를 보고 놀라서 허겁지겁 달리다가 게시판에 딱 부딪히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뒤에 선지가 달려와 길구에게 수건을 내민다. 그 장면이 재미있는 게, 연기가 아닌 것 같다. 정말 놀라서 허겁지겁하는데, 저는 안보현의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엽다. 저만의 귀여운 모먼트인 것 같다."
Q. 영화 속에서 선지가 탄 버스가 942번이다. '엑시트'의 관객 수였던 942만 명을 담은 숫자일까. 이런 숨겨놓은 장치들이 또 있을까.
이 "사실 그건 감독의 재미다. 창작자에겐 의미 있지만, 관객들은 몰라도 되는 정보들이다. 그런 건 너무 많긴 한데, '알아봐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넣은 건 거의 없고, 재미로 넣은 것들이 많다. 길구 인형의 이름도 있다. '길군'이라고 제가 이름 지었다. '길군'과 '문양'이라고. '길군'도 사실 회색의 인형이다. 길구 역시 초반에 회색 옷을 많이 입혔다. 회색에서 점점 자신의 컬러를 찾아가는 식으로 설정했고, 어느 순간이 되면 길구와 선지의 옷 색깔이 '블루톤'으로 같아지는 시점이 있다. 마지막에 악마 선지가 입은 옷은 '수의'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때 길구도 비슷한 색깔로 상황에 맞게 연결 지점을 찾으려고 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항아리는 제주도의 특색있는 전통이 담긴 토기 항아리다. 구우면서 특이한 문양이 나온다. 어떤 부분은 밝게, 어떤 부분은 어둡게 나온다. 제주도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분이 계셔서, 이중성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그것 역시 '알아주십사' 한 건 아니다. 보통 창작자들이 미술적인 도구 등을 결정할 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생각하면 제일 빨리 답이 나온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상근 감독이 작품 속 캐릭터 인형 '길군'을 들고 있다. / 사진 : CJ ENM
Q. 올해 여름 개봉한 텐트폴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오리지널인 작품이다. 그리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만큼 고민되는 지점도 많을 것 같다. 특히, 코미디의 경우에는 한 끗 차이로 어떤 이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지 않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왜 오리지널이어야 할까.
이 "일단은 제가 방에 붙여놓은 말이 있다. "Be Original(오리지널이 되자). 오만한 생각일지는 모르겠는데, 오리지널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물론 한계에 부딪히거나, 아니면 좋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 있으면, 저도 열려있는 상황이긴 하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2시의 데이트'가 있는 폴더 안에 써 놓은 여러 제목의 이야기들이 있어서 최대한 많이 꺼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소재와 작업물 속에서 나만의 것을 조합하고 찾아가는 데 항상 어려움은 있다. 또, 누군가 불편해하지 않을까라는 필터링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저의 작품으로 누군가 상처받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발현되면, 밍밍한 작품이 될 수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은 건드리지 말자는 생각은 있다. 아무래도 좀 독한 것이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이 맛있는 세상이지 않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런 마음이 있다. 진라면 순한 맛도 정말 맛있지 않나. 그런 맛을 보여주고 싶다. 이건 PPL은 아니다."
Q. '인간상근감독'이라는 애칭에 걸맞은 맛인 것 같다. 그 애칭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
이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예전에 '1박 2일'에 상근이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그때 제 개인 블로그 이름이 '개가 더 유명해서 슬픈 남자'였다. 친구들이 상근이보다 덜 유명한 영화감독 지망생을 불쌍히 여겨, 제 데뷔작인 '엑시트' 촬영 때 '개보다 더 유명해지자'는 의미에서 커피차를 보내줬다.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고, '엑시트'를 재미있게 봐주신 분들이 '인간상근'이라고 붙여주셨다. 인간적인 느낌도 들고 그래서 되게 좋다. 친구들에게 고맙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상근 감독 / 사진 : CJ ENM
Q. 박정민 대표의 출판사 '무제'를 통해서 '악마가 이사왔다' 각본집도 나왔다. 각본집에 콘티도 있고, 미공개 스틸컷도 있고, 뭔가 더 가득 차게 '악마가 이사왔다'를 즐길 수 있는 느낌이었다. 박정민 대표이자 배우와 차기작에서 함께할 생각도 있을까.
이 "어떻게 보면, 박정민 배우가 저를 만나 주면 좋은 거지, 제가 컨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웃음) 첫 GV(관객과의 대화) 때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진짜 연락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정민 대표에게는 계속 넙죽 절하고 있다. 영화도 좋아해 주시고, 각본집도 너무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제가 쓴 창작물에 크게 점수를 주기 어렵다. '굳이 활자로도 볼만한 내용일까?'라는 생각에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악마가 이사왔다'를 재미있게 봐주셨을 관객에게 좋은 굿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냈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주셔서 지금은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각본집을 통해서 편집이 어떻게 됐는지, 영화 속에 어떤 풍부한 지점이 있었는지도 비교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악마가 이사왔다'가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기를 바라는지 궁금하다.
이 "제가 펼쳐놓은, 이른바 바다라고 하면 거기에서 작은 모래알 틈에 있는 어떤 소라도 있을 거고, 게도 있을 거고. 여러 생물과 물체가 있을 텐데, 그렇게 깔려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조금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만 잘 찾아내 주시면, 생각했던 지점과 분명히 다른 뭉클함을 느끼며 나오실 거로 생각한다. 영화 제목에 '이사왔다'라는 말도 있지만, 관객이 아주 살짝이라도 움직였으면 좋겠다. 심장이든, 어떤 감정이든. 저는 영화를 만들 때 누군가의 마음을 진짜 1mm, 아주 살짝 이라도 움직이는 순간이 '영화의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먼트를 드리고 싶다."
허 "제가 '악마가 이사왔다'를 보고 제일 좋다고 느낀 부분은 '인간상근'이 가진 소중한 감성이다. '지금 한국 영화에서 이런 감성 소중해'라고 말하는 한 관객의 글을 봤는데, 그걸 보면서 무언가 움직이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상근감독'이라는 말보다 이상근 감독을 더 잘 표현할 말이 있을까. 화면 가득 클로즈업한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에 몰아쳐 흐르는 눈물이 아닌, 살짝 굽은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겹치는 우리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욱신 한다. '엑시트'와 '악마가 이사왔다'를 본 한 사람의 관객으로 느꼈던 이 욱신거린 마음은 아마도 그가 표현할 다음 이야기 역시 더 궁금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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