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애마'를 연출한 이해영 감독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애마'의 구체적 장면 묘사와 함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1982년 개봉한 영화 '애마부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희란(이하늬)은 당대 톱스타다. 하지만 더 이상 '노출 여배우'가 아닌 '배우'의 길을 걷고 싶은 인물이다. 그렇기에 '애마부인'의 주연 자리를 거절한다. 이후 '애마부인'의 주연은 오디션을 걸쳐 발탁된 신인배우 신주애(방효린)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톱스타 정희란을 제작사 대표 구중호(진선규)가 놔줄 리 없다. 구중호는 기어이 조연으로 정희란을 작품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신인배우 주애와 톱스타 희란과 함께 신인감독 곽인우(조현철)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영화 '애마부인'이 출발한다.
'애마부인'이라는 제목부터가 도전이었다. 연소자관람불가의 상징 같은 제목이었다. 그런데, 이해영 감독은 '애마부인'을 중심에 두고, 질주하는 두 여성 서사를 완성했다. 노출 수위부터 누군가 불편해할 수 있는 감정들은 좁은 길을 더 좁게 만들었다. 하지만, 질주의 맛은 그런 게 아닐까. 좁은 길 위에 놓인 장애물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시대 여성들이 그랬고, 버거운 현실을 살아내는 이들 역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해영 감독이 '애마' 속에 담고 싶었던 마음이다.
시리즈 '애마' 촬영 현장의 이해영 감독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앞서 '천하장사 마돈나'를 공개한 이후, 2017~8년쯤 '애마'를 떠올렸다고 했다. 첫 시리즈로 '애마'를 떠올린 이유, 혹은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2시간 영화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2시간에 압축이 안 되어서 방치해놨다. 80년대는 제가 초·중·고를 다녔던 학창 시절이었다. 그때 프로야구도 출범하고, 영화 흥행작이 매년 등장하고, 극장에 사람이 넘쳤다. 그때 기억을 좀 더 되짚어보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매해 '섹스심볼'이 있었고,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남자 섹스심볼과 여자 섹스심볼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게 달랐다. 예를 들어, 브루스 스프링스틴이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전성기에는 미국 성조기처럼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마돈나를 생각해 보면, 뭔가 음탕하고, 마녀 같고, 헤픈 이미지로 소비가 되었던 것 같다. 제가 그 시대를 소환할 때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같은 욕망을 대변하는 지점인데, 해석이 왜 이렇게 달랐을까. 남성 섹스심볼은 전성기를 누리면 그만이었지만, 여성 섹스심볼은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자기 목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했다. '애마부인'이 등장했을 때 저도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애마부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 뭔가 야하고, 엄청난 존재였기에, '애마부인'이라는 말만 누가 꺼내도 키득대며 웃는 때였다. 그런 '애마부인'이라는 전설적인 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섹스 심볼에 대한 감수성과 함께 녹여내면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애마'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노출 수위나, 언어의 사용 등 모든 것이 어떻게 보면 고민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처음 할 때 '(사람들이) 야하다고 생각하겠다'라고 생각했다. 공개하니 여지없이 그런 피드백이 꽤 많다.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도 댓글에 '어디까지 나와?'라는 반응이 있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수위를 어느 정도로 가져가야 하는가. 이 기획과 소재가 관심과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는 사명도 있지만, 동시에 불편함과 위반하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그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실제 1982년에 개봉한 '애마부인'을 지금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놀랄 정도로 야하지 않다. 노출이 없다. 당시 '3S 정책(군사 독재에 대한 반발을 억제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으로,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의 앞 글자 'S'를 따서 명명된 이름)'의 하나로 성애 영화(성적 욕망을 주제로 한 영화 장르)가 장려되지만, 동시에 심의와 가위질도 엄격해서 실제 성애적 표현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다. 실제 '애마부인'을 보면 노출은 없고, 시리즈 속에서 곽 감독(조현철)이 그랬던 것처럼 '진짜 노출과 진배없는 노출'을 궁리한 흔적만 있다. 그래서 82년 '애마부인' 노출 수위에 맞추려고 했다. 실제 '애마부인'이 하지 않은 높은 수위의 노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원칙에 위배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수위가 됐다. 시청자들이 비교해서 봐주시면 좋겠다. 보시면, 82년 '애마부인' 보다 훨씬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거다. 빠지지 않는다. 못지않다. (웃음)"
'애마'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같은 이유로, '애마부인'의 시그니처 같은 장면인 '말을 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영화 속 영화 '애마부인' 장면은 원작에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주애가 말을 타고 달리는 느낌은 에로틱하기보다 힘 있고, 파워풀하기를 바랐다. 속된 말로 '완전 최고 멋있게 말 타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굉장히 힘 있는 질주라서 흡족하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애마'의 시그니처 장면은 6화에서 광화문 대로를 달리는 주애와 희란의 모습 같다. 그 장면이 처음 이야기를 떠올릴 때부터 목표를 두고 달렸다. 그걸 잘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 골(Goal) 같은 거였다."
Q. 배우 이하늬는 인터뷰에서 '이해영 감독님은 원래 장인이었는데, '애마'하면서 미치광이가 되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더 궁금해졌다. '애마'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장면을 꼽을 수 있을까.
"저는 '애마'를 한 6만 번 정도 본 것 같다. 이렇게 많이 봤음에도, 저에게 유효했던 장면은 3화 엔딩 같다. 권력자에게 호출을 받고, 주애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모멸감을 느끼며 환복하게 되고, 파티장까지 가는 그 장면이다. '애마'를 '성애영화를 만들어가는 가벼운 이야기'인 것처럼 끌고 가다가,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라고 선전포고하는 시퀀스다. 그 지점이 촬영하고, 후반작업하고, 완성하면서 배우들의 연기부터 촬영, 조명, 미술 등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특별했다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그 장면을 볼 때, 저도 뭔가 가슴에서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저에게 유효한 표정 같다. 감정이 폭발해서 쓰러질 것 같은 주애와 굉장히 차갑게 이 험한 세상을 겪으며 멍도 상처도 많지만 단단한 희란의 얼굴이 대비되는 장면은 여전히 강력하게 저에게 작용한다."
시리즈 '애마'를 연출한 이해영 감독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애마'의 처음과 끝은 수미쌍관 구조처럼, 비행기 장면이 똑같지만 다르게 등장한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 희란(이하늬)에서 주애(방효린)에서 변한 여정을 보여주는 느낌도 든다.
"시놉시스를 쓸 때부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정해두고 임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쪽은 낮이고, 다른 한쪽은 밤이고, 한쪽은 희란이고, 다른 한쪽은 주애였다. 초반에는 '어, 뭐지?' 이런 열리는 느낌이라면, 뒤에는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라는 여운이 있기를 바랐다. 시리즈 메시지라면, 주애가 일본 TV를 통해 희란에게 전하는 말 같다. 그 대사는 82년 영화 '애마부인'의 주인공 안소영 선배님의 다큐멘터리에서 받은 영감 같다. 배우 안소영이 아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에서 80년대 여배우의 삶을 반추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외롭고 치열한 싸움이었겠다', '아무도 몰라줬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 안소영은 80년대에 배우 활동을 하는 내내 링 위에 올라가 끊임없이 스파링하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안소영 선배님을 향한 존경과 응원의 메시지로 '링 위에 함께 있다'라는 말을 쓰고 싶었고, 그렇게 쓰여진 대사였다."
Q. 첫 시리즈 연출이었다. 느낀 바가 있는지, 다음에 또다시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는지 궁금하다.
"2시간짜리만 쓰다가 6부작을 써보니 되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원래는 암산으로 머릿속 퍼즐이 맞춰지고 했는데, 6화로 늘어나니 처음 시나리오 쓰는 신인 작가처럼 임한 것 같다. 원래 그렇게 잘 안 하는데, 벽에 표도 많이 붙여놨다. 그렇게 해야 머리에 들어오더라. 촬영도 6화를 동시에 찍다 보니, 1화의 장면을 찍다가, 6화의 장면을 찍기도 했다. 배우들의 디테일한 감정선과 연기 톤 등에 정말 초집중해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작업하는 느낌이었고, 정주행하면서 객관적으로 보니, '참 고생 많이 했구나' 싶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진짜 큰 걸 해냈구나' 싶다. 새삼스럽게 인생 경험을 한 느낌이다. 한참 작업에 임할 때는 '와, 이런 거구나' 싶었는데 다 완성을 해놓고 느껴지는 보람과 성취감이 꽤 큰 것 같다. '해냈다'라는 느낌? 이렇게 이야기를 펼쳐놓는 재미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리즈 '애마' 촬영 현장의 이해영 감독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건강은 괜찮은지 염려된다.
"건강을 갈아 넣고 하는 것 같다. 사실 힘들었다. '애마' 찍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뚱뚱해진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몸무게를 봤고, 내 몸이 이렇게 팽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시리즈를 하게 된다면, 운동도 하고, 좋은 거 많이 먹고, 건강 루틴을 챙겨야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아마 잘 안될 거다."
Q. 이해영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면, '천하장사 마돈나', '독전', '유령' 등 어느 하나 쉽게 간 작품이 없었다. 무엇보다 작품을 보고 나면, 가슴에 콱 와서 박히는 무언가가 항상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이 작품에서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제가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마이너라고 생각했다. 결핍을 강요받으며 자란 것 같다. 그런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이 저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이 제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할 때 표현되는 것 같다. 그리고 늘 유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유머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뭐든지 예뻐야 한다. 아름답고 예쁜 것에 대한 광적인 집착. 아마도 이 세 가지인 것 같다. 너무 피곤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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