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속 수진 역을 맡은 배우 공민정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가 개봉했다. 이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장편경쟁,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 ‘창’ 한국장편영화경쟁 등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며 호평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배우 공민정이 있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사라진 남자 정호와 그를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기억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세 여자 수진(공민정), 인주(정보람), 유정(정회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관객에게 설명보다는 침묵으로, 움직임보다는 멈춤으로 생각할 공간을 마련해 둔다. 공민정이 맡은 수진은 정호 여자친구이면서 동시에 작가 훈성과도 사랑하게 된 인물이다. 공민정은 '수진'에 대해 "불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어요. 감독님께서 '바람피운 적 없냐?'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하지만 사람이니까 상대방을 향해 믿음이 흔들린 순간은 알고 있죠. 그런 것들을 확대하거나, 감정을 이입해 보면서 수진으로 임한 것 같아요. 정호 역을 한 분이 원래 배우가 아니시거든요. 해외에서 다른 일을 하시는데, 영화 '이어지는 땅' 작업 때도 함께 했었어요. 미묘한 인물로 설정이 되어있었거든요. 이번 작품에서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되니, 더 수진으로 이입하기가 편했던 것 같아요."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스틸컷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공민정과 조희영 감독이 함께 호흡을 맞춘 네 번째 작품이다. 공민정은 조희영 감독에 대해 "그냥 믿고 하는 감독님"이라고 강한 신뢰를 전했다. "당연히 대본을 봐야겠지만, 감독님께서 '저 작품하나 썼어요. 같이 해요'라고 이야기하면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감독님이세요. 현장에서 믿음이 두터워졌고, 사적으로도 같이 한 시간이 길거든요. 그 시간으로 끈끈한 유대가 생겼어요. 조희영 작가님은 현장에서 배우가 그 인물로 살아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그렇게 현장을 만들어주는 분이세요. 배우들은 어떤 현장에서도 살아내려고 노력하지만, 몸으로 산다는 느낌보다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순간도 많거든요. 저는 제가 그 인물로 살아내고 있다고 믿는 순간이 많을 때 밀도가 높은 작업이라고 느껴요. 그 순간을 많이 만들어주는 분이 조희영 감독님이세요."
독특한 지점이 있는 영화다. 카메라는 다양한 컷을 나누기보다 한 자리에서 배우들을 관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에는 보지 않았던 소리나 움직임을 더 예민하게 감각하게 된다. 길 위에 고정된 카메라에서 오가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오가는 다른 행인들까지도 집중하게 되는 이유다. 공민정 역시 다르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었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스틸컷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제가 처한 상황, 기억, 경험에 따라서 포커싱을 맞추는 인물이 각기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는 한 명의 주인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늘 불안이 높은 사람이기에 수진을 연기할 때 제 안에서 그 모습을 찾기 수월했던 것 같아요. 수진 대사 중에 '진짜를 담는다는 건 반칙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보이는 게 다 진짜는 아닌 거 같아요'라는 말이 있거든요. 그 대사를 한동안 곱씹었어요. 그게 수진을 대변하는 말 같아서요. 사실 사진을 찍는 것도 보는 시선과 생각이 담긴 거잖아요. 각자의 시선과 생각대로 보는 거로 생각했어요."
영화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호를 중심에 두고 각자의 시간이 뒤섞여있다. 공민정은 "마음을 정리할 수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특정한 사건이 있어서 기승전결에 의한 영화가 아니거든요. 미세한 것들에 한 인물의 시선과 감정이 교차하면서 드러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것에 이 작품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 각자가 가진 다른 기억이나 경험을 떠오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보면서 곱씹어볼 수 있고, 내가 이입할 수 있는 인물들이 있고, 그것이 매력적일 수도,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정답이 없는 영화예요. 삶의 모습도 다양하고, 영화도 다양하게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관객에게 작품이 가진 매력을 전한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스틸컷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공민정은 대학교 시절, 영상영화학과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며 지난 2009년에 영화 '구경'으로 데뷔한 이후, 다수의 독립 영화에서 활약해왔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도 익숙한 배우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는 뜨겁게 '영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구성원으로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던 때가 있었어요"라고 영화를 사랑했던 자신의 과거를 꺼낸다.
"비디오를 미친 듯이 빌려봤어요. 학교 끝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과자를 쌓아놓고 보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옛날부터 영화를 너무 사랑한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를 보면서 스르륵 잠이 들고, 그렇게 잠들어 꿈처럼 여겨지는 감상이 너무 행복해서, 영화를 틀어놓고 잠드는 날도 많았어요. 저에게 영화는 중의적인 의미의 '꿈' 같아요."
"대학에 가면서 극장에 더 많이 갈 수 있었어요. 애무시네마를 너무 좋아해서 거의 매일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애무시네마에 관객이 한 명 아니면 두 명 있었거든요. 제가 일하기 시작할 때쯤, 애무시네마 대표님께서 극장의 안내 멘트를 녹음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비상구가 어디고 이런 거. 그 녹음을 하고 애무시네마 평생이용권을 주셨어요. 평생 와서 영화 봐도 된다고. 제가 그 정도로 극장을 사랑했어요. 아직도 애무시네마에 제 목소리가 나와요. 그러니, 평생이용권도 유효하죠."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속 수진 역을 맡은 배우 공민정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극장을 이야기하는 공민정의 눈빛이 반짝였다. 사랑했던 만큼, 늘 잘하고 싶고, 관객의 마음에 더 잘 가닿고 싶다. '2024 서울국제영화대상' 드라마부문 최고연기상, '2022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코미디로맨스 부문 여자 조연상 등 수상기록으로 그는 이미 이른바 '잘'하는 배우다. 하지만 여전히 목마르다.
"연기 욕심이 한 번도 없었던 적이 없어요. 어젯밤에도 남편에게 '연기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날은 연기 이야기를 하다가 속상해서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감사해서 웃기도 하고. 배우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늘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놀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요."
공민정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전히 타는 갈증을 느끼고 있는 배우 공민정이 꿈꾸는 인물은 누굴까.
"저를 많이 끌어다가 쓸 수 있는 작품 같아요. 저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뭐가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고, 어떤 나를 끌어다 쓸까, 계속 나를 자극시키는 그런 캐릭터인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몸에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있어요. 진짜 신기한 화학작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배우와 배우가 만나서 연기할 때,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거나, 손이 바들바들 떨릴 때가 있어요. 저는 그게 몸이 살아내는 사건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마주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만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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