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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음'의 감각 마주하기…조희영 감독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파편들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5.09.05 13:20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를 연출한 조희영 감독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 본 인터뷰에는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독특한 감각의 영화다. 마치 깨진 유리알처럼 다양한 일상의 파편들이 때로는 서걱거리고 때로는 반짝이는 등의 질감으로 다가선다. 영화 속에는 한 사람, 정호(감동환)에 대한 각기 다른 마음과 생각을 지닌 세 명의 여성, 수진(공민정), 인주(정보람), 유정(정회린)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삶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과 관계 등의 속에서 영화의 파편들은 이어지고 붙여진다.

조희영 감독의 전작 '이어지는 땅'에서도 다양하게 비친 삶의 순간들은 이어지며 '필연'이 되었다. 마치 영화를 통해 레이어가 많은 회화 작품을 빚어내는 듯했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궁금했던 작품을 만났고, 그 작품에 대해 조희영 감독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기록했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스틸컷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Q. 일상을 다른 결로 감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떠올린 계기가 궁금하다.

"이 작품을 떠올린 것은 명확한 어떤 시기라고 딱 규정짓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약 15년 전쯤 한 작가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글 작업을 보고,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그 상태에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쌓인 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버려진 유리로 만들어진 설치 작업을 보게 됐다. 유리가 조각조각 파편으로 설치된 것을 보면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가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그때 처음 이야기를 구조화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18년 후반이었다. 하반기 제작 지원을 위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땅' 촬영 전에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다. 운이 좋게도, '이어지는 땅' 이후, 제작 지원에 선정이 되면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시작하게 됐다."

Q. 일단 제목을 다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긴 제목이다. 이 작품이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제목이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작품 속 인물들이 유리의 물성, 그 자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불안하고, 위태롭고, 뾰족뾰족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스스로만 아는 불안과 비밀 등을 품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이 제목만큼 인물을 대변할 제목이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어떻게 보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글자 수도 길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결정했지만, 사실 명확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이 제목이어야 했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포스터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Q. 사실 영화를 보면서, 수진, 인주, 유정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른 온도를 보여주는 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캐릭터를 구상했나.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걸로 맞는 것 같다. 실제로 시나리오 쓸 때, 세 명의 감정선과 레벨이 한 사람의 것으로 생각하며 흐름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한 이유는, 정호라는 사람은 함부로 정확한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보여주지 않는데, 그게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지점 같다. 한 사람에 대해 절대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 다 다르게 알려질 거고, 그렇게 알려지는 중인 거다. 영화 속 수진, 인주, 유정은 안고 살아가는 각기 다른 고통, 고민, 불안 등 역시 한 사람의 여러 면 중 하나인 것처럼 설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Q. 그 속에서 캐릭터가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다. 서로를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이들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쳐간다.

"편집하면서 계속 고민하고 수정한 지점이다. 인물들이 교차하는 지점이 영화의 한 축이 됐다. 그걸 관객들이 어디까지 아실지, 모르실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 지점을 계속 유지한 채로 파편처럼 흩어진 구성을 어떻게 이어갈까?' 하는 지점이 큰 고민이었다. 정호를 중심으로 서로 모르는 관계도 있지만, 그 인물이 머물던 곳과 그 인물을 떠올리며 스치거나 감정선이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한 인물이 가진 불안이 다른 인물과 스치며 해소되는 지점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를 연출한 조희영 감독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Q.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단정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카메라의 무빙보다는 고정된 카메라의 화면을 통해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했다. 서로 '나를 봐달라'라고 화려하게 요동치는 요즘 시대에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더 설득력 있고, 많은 분이 편안하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해드리려면,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좋아했던 영화들은 그런 방식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스스로 제 작업 방식에 대해 계속 질문하며 검열하게 된다. 물론 어려워하는 관객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정된 화면 속에서 인물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반드시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Q. 두 가지 면에서 감독님의 용기가 크게 느껴졌다. 첫 번째는 '배우들에 대한 믿음이 굉장하구나'라는 점이었다. 단편 영화 작업부터 네 편을 함께한 공민정 배우, 세 작품을 함께한 정회린 배우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저는 공민정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다. 제가 원하는 방향이다. 제가 쓴 대사를 말로 옮겨주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 공민정은 매 테이크마다 연기가 다 다르다. 계산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연기에 각기 다른 리액션의 온도를 맞춘다. 그렇기에 모든 테이크가 살아있다. 현장에서 차 소리, 길가는 행인들의 목소리, 창문을 여닫으며 달라지는 빛 등 모든 감각을 열고 날 것으로 반응하며 대사를 수행한다. 제가 정말 많이 믿는 것 같다. 네 편을 함께 작업하며, 믿고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제게 전달해 주신다."

"정회린 배우는 제 단편영화 '주인들'을 통해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전에는 모델 활동을 하며, 카메라와 익숙해지는 시기를 갖고 있었다. 원래 알고 지낸 친구였다.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라는 말에 단편 영화 작업을 함께할 것을 제안했고, 함께 하게 됐다. 저는 '정회린'이라는 친구가 가진 수많은 재능이 배우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다양하다. 제가 감히 성장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늘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스틸컷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Q. 두 번째로 느껴졌던 용기는 '미장센'이었다. 카메라로 고정된 화면 속에 모든 것들이 제 자리, 그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창문이나 거울 등에 비치는 인물의 그림자까지도 말이다.

"윤성혜 미술감독님이 맡아주셨는데, 그것은 100% 미술감독님의 공인 것 같다. 준비 기간 때부터 촬영 현장까지 빈틈없이 만들어주셨다. 항상 제가 놓치고 있던 작은 부분도 먼저 제안해 주셨다. 미술감독님께서 만들어주신 시안이 굉장히 디테일했고, 촬영한 장면과 똑같았다. 사실 예산이 많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미술감독님이 제안해 주신 지점이 늘 반가웠다. 미술감독님을 만나고 용기가 생겼다. 함께할 때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낀 현장이었다."

Q. 영화는 깨진 유리의 파편처럼 전·후가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

"인물들의 시간이 반복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데, 같은 장면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초반부에 보여준 한 인물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트를 나누는 기준은 정호가 배접된 종이를 뜯어내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영화 초반부에 나온 장면을 그대로 사용했다.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시점으로 넣은 것은 그 장면이 유일하다. 그 행위를 기준으로 시간이 나눠진다. 초반부에 보여졌던 시간에서 반복되는 지점은 인물들이 듣지 못했거나, 오해했거나, 달라지는 마음의 결 등이다. 후반부로 가시면서 이해하기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 스틸컷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Q. 앞서 말했듯이 영화를 꿰뚫고 있는 장면은 깨어진 유리 파편들이다. 무엇이 깨진 것인지 명확한 지점이 궁금했다.

"인주가 작업실에서 불을 끄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불을 끄기 전에 유리 위에 조명이 비치면, 유리 프레임은 흐릿해지고, 그 위에 얹혀있는 그림이 또렷해진다. 그 상태가 인주가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완성된 작품이었다. 유리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게 깨지면서 원래 전시하려고 했던 모습을 상실한 채로, 깨진 유리의 파편들을 전시하게 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Q. '극장의 위기'라는 말이 대두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문법을 유지하며, 영화를 완성해 가는 동력이 궁금하다.

"그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저는 어릴 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내 방식대로 소화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되게 오래된 애착 인형처럼 다시 꺼내보기도 하고, 다시 반가워하며 좋아했다. 그 경험 안에서 살아왔다. 그런 경험 때문에 저도 영화를 만드는 것을 제 작업으로 생각한다. 매체가 영화일 뿐이다. 다양한 관람 방식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분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예술이기에, 저에게 영향을 준 미술, 문학 등의 작업을 잘 소화해서 꿈꿀 수 있기에 당연하게 계속해 올 수 있던 것 같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뿐이지'를 연출한 조희영 감독 / 사진 : 영화로운 형제

Q. 마지막으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마음이 어지러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그 인물들이 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되는지, 기승전결과 해피 혹은 새드엔딩의 형태로 결을 맺어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깨진 유리를 담고 있는 장면, 그 자체로 우리 모두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작게는 인간관계, 혹은 살면서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 더 크게는 본인이 가진 미래를 향한 두려움, 깊은 고민 등 매일이 어지러운 분들이 이 작품을 보고, 깨진 유리 파편을 마주하며 아무것에도 개의치 않고, 누구에게 판단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으로 살아가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시점이나 해석에 대해 열려있다. 타인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시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지만, 관객분들께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문장을 가까이 두시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희영 감독은 영화를 전공으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에 빠져든 것은 자연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남고 싶은 동력을 만들었다. 영국에서 유학하며 의상을 전공할 때도, 영화 속에 들어갈 의상을 떠올리며 미술 감독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현실화했다. 당당하게 '조희영 감독'의 언어만으로 스크린에 풀어놓은 이야기는 단단하게 관객 각자의 메시지로 관통한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말로 이어질 다음 작품에도 기대감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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