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영화 '얼굴'에서 함께한 인물들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저는 데뷔하고 15년 동안, 한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끊지 않고 15분 동안 연기를 이어가는 걸 처음 봤다."
배우 박정민이 영화 '얼굴'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한국 영화 사상 아마도 처음 시도된 화상 기자간담회에서다. 내일(11일) 정식 개봉을 앞둔 영화 '얼굴'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일정에 참석하며, 현지에서 화상으로 기자간담회에 임했다. 토론토 현지에 있는 연상호 감독과 배우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은 화상으로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의 상영관에 있는 취재진과 만났다.
영화 '얼굴'은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백골 시신 발견 후, 그 죽음 뒤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성취와 성과에 집착하는 나는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그것이 19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기인 근현대사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무엇을 착취했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졌다. 자신의 장애를 이겨낸 기적의 사나이 임영규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 시각 예술로 성공한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정영희라는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를 구조화해 나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영화 '얼굴'의 언론 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는 화상으로 진행됐다. / 사진 : 디지틀조선일보 DB
박정민은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이라는 1인 2역을 맡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도전해 본 '1인 2역'이었다. 그는 "큰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임하지 않았다. 제 안에 놓고 보니 이 영화와 맞닿는 느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가열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아버지 역할을 조금 더 먼저 촬영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 역을 진행해 나갈 때 아버지를 연기하면서 제 몸에 쌓인 수치심 같은 걸 아들로 바라보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1인 2역이 도전의 느낌이라기보다 그 두 역할이 제 안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두 역을 하면서 연기에 꽤 자연스럽게 도움이 됐다는 느낌을 오히려 받았다"라고 두 역할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음을 전했다.
권해효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도장을 파는 업인 전각 장인으로 추앙받는 '임영규' 역을 맡았다. 그는 "제가 15년 넘게 함께 산 장인어른이 시각장애를 가지셔서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조심스러움, 움직임 등을 준비하기보다 오랜 시간 동안 보고 느낀 점이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시각 장애를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라고 시각 장애 연기의 후일담을 전했다. 그보다 권해효는 '임영규'의 내면에 집중했다. 그는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면 재미있다"라며 "임영규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라고 덧붙여 이야기했다.
신현빈은 젊은 시절 '임영규'의 아내 '정영희' 역을 맡았다. 특히, 그는 '얼굴'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몸의 움직임과 목소리 등으로 캐릭터를 표현했다. 그는 "연기를 준비할 때도 여러 마음이 들었다. 어렵다, 두렵다는 생각과 재밌겠다는 생각이 공존했다"라며 "관객의 상상으로 영희 얼굴을 그려나갈 여지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인지가 느껴질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한 것 같다. 얼굴의 표정이 아닌 다른 걸로 어떻게 표현할까? 시도했다. 그런 것이 어떤 마음으로 다가갔는지 궁금하고, 염려도 된다.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기존에 제가 가진 생각과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라며 자신의 도전을 비춰 이야기했다.
박정민과의 부부 호흡에 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신현빈은 "저희는 '변산'으로 만나게 된 또래 배우 였다. 이번에 다시 오랜만에 만나서 부부로 연기를 하게 됐다. 뭔가 저희가 사실 굉장히 압축적으로 짧은 시간에 촬영해야 했고, 함께하는 장면이 편안하지 않은 장면이 꽤 있었다. 서로 알고 있고, 어느 정도 믿고 있기에 올 수 있는 장점이 많았다"라며 "내가 이렇게 해도 받아줄 거라는 마음으로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연기했는데, 그런 순간이 마냥 외롭지는 않았다"라고 박정민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얼굴'의 가장 강렬한 장면은 민낯의 얼굴을 마주한 부자의 대화에 있다. 권해효와 박정민이 영화 후반부에 민낯의 '얼굴'을 드러낸 장면은 압도감을 더한다. 이와 관련 박정민은 "저는 데뷔 15년 동안 한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끊지 않고 15분 동안 연기를 이어가는 것을 처음 봤다. 굉장히 압도적이었고 선배님께서 그 장면을 몰입해서 계속 이어가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객분들이 이 장면만으로도, 관객에게 꽤 큰 선물이 될 수 있겠다.' 눈앞에서 그 연기를 보며 '다신 못 볼 광경일 수 있겠다', '이 광경을 본 내가 너무 장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감탄했다. 이에 권해효는 "그냥 살아남은 사람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변명하는 장면이 아니고, 설명하는 장면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것이 어떻게 전달될지 저도 궁금하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임성재와 한지현은 데뷔 후 처음으로 '얼굴'을 통해 해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임성재는 "제가 잠깐이나마 뭐라도 된 것같이 기분이 참 좋다"라는 솔직한 소감으로 현장의 웃음을 더했다. 이어 "속으로는 한국분들께서, 기자분들께서 어떻게 봐주실지 그 생각에 내내 사로잡혀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한지현은 "처음으로 외국, 해외 국제영화제에 나와 있어서 너무 모든 게 다 새로웠다. 그 많은 분과 함께 영화를 보니, 같이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고 새로웠다. 기자간담회를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술이 발전했다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얼굴'은 1,8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상영됐다. 연상호 감독은 "이곳에서, 아니 이곳에서도 박정민은 스타다. 토론토의 저스틴 비버라고 하고 있다"라고 박정민의 남다른 인기를 전해 현장을 웃음짓게 했다. 이어 "제가 느낀 건 1,800석 정도 되는 객석에서 봤는데 꽉 채워져서 다 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기쁨이 뭔지 되살아난 것 같다"라며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GV(관객과의 대화)에 임해주고, '얼굴'을 공감해 준 토론토 관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얼굴'은 2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저예산으로 해야겠다. 결심을 처음 했을 때, 1억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물정을 잘 모르는 거였더라"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첫 단추부터 박정민이 들어오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이었다. 스태프들도 같이했던 스태프들이 모였다. 이미 제 예상보다 퀄리티가 훨씬 높아서 미안했다. 배우들에게 공식 사과를 드리겠다"라고 덧붙였다. 연상호 감독은 "전설적인 아시아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그 영화들이 대부분 저예산영화였다. 저예산 영화가 가진 에너지와 힘이 따로 있다고 느꼈다. 이걸 시스템화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라며 "이런 영화를 만드는 기준과는 다른 기준으로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고, 이것에 시스템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라고 '얼굴'을 통해 생각한 지점을 전했다.
한편, 영화 '얼굴'에는 멀티플렉스에서 봐왔던 영화들과는 다른 '얼굴'이 있다. 배우 신현빈을 캐스팅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1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선택을 한 연상호 감독은 분명 다른 결과 행보와 의미를 스크린에 남겼다. 박정민은 노개런티 출연으로 연상호 감독의 의미에 동참했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담긴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사랑하는 관객에게도 반가운 작품이 될 수 있다. 이는 내일(1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 상영시간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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