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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임성재가 제 머리에 맥주를 들이부으면 웃겠다고 했다"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5.09.21 10:22

영화 '얼굴'에서 젊은 날의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의 모습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와우포인트(WOWPOINT)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얼굴'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얼굴'은 묘한 작품이다. 작품을 본 후에는 마음속에 엉킨 타래가 풀리지 않아 오래 안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과 함께 하나씩 풀려가며 '아, 보지 못한 건 나였구나'라는 생각의 끝에 도달한다. 그렇기에 많은 생각으로 앞에 앉은 배우 박정민과의 인터뷰가 쉽지 않았다.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백주상(임성재)이 맥주를 부으면, 웃겠다고 했다"라는 박정민의 말이 영화 '얼굴'을 향한 수많은 고민들을 대변하는 듯했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권해효, 박정민)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특히, 박정민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현재의 아들 임동환 역까지 1인 2역을 소화하며, 두 명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했다. 박정민은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영화 도전에 해당 원작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이자, 감독에 대한 신뢰,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도전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공감으로 출연료 없이 '얼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 '얼굴' 포스터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데뷔 후 처음으로 1인 2역에 도전했다고 알려졌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현재 아들의 모습을 한 작품 속에서 연기하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

"두 사람이 한 역(임영규)을 연기한 것, 한 사람(박정민)이 두 역(임영규, 임동환)을 연기하는 것이 이 영화 '얼굴' 한정으로 독특한 감정을 전할 수 있겠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 연상호 감독님은 아들 임동환 역만 제안해 주셨다. 이를 하기로 하고, 그래픽 노블 '얼굴'을 꺼내 다시 보고 2~30분 후쯤 다시 전화했다. 사실 아들 역할보다 젊은 아버지 역할이 더 좋아 보여서, '젊은 아버지 역할은 캐스팅됐냐?'라고 여쭤봤다. 연상호 감독님께서 간파하고 '안 그래도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 말씀이 그거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진행이 된 거다. 사실 링크가 된 인물이지 않나. 따로 떼어놓고 설명이 안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인 2역을 하면서도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기억도 얼마 없다. 오히려 재미있었던 쪽에 가까웠다."

Q. 임영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독특했던 건 배우 권해효, 박정민 모두 이를 몰입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냥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함이 있는 정도로, 가볍게 묘사된 느낌이다.

"권해효 선배님도 그렇게 접근하신 것 같다. '얼굴'이 시각장애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장애가 아닌 확장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가 막히게 완벽한 시각장애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덜했다. 다만 앞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했다. 저희끼리 '내 뒤통수를 본다'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초점이 확 흐려진다. 인식이 잘 안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청각이나 촉각이 조금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제가 아예 안 보이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분들의 감각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만 해도 우리 영화가 필요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권해효 선배님과 나눈 것 같다."

영화 '얼굴'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이후, 시각장애가 있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원샷한솔의 채널에 출연해 암전 상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듣는 소설' 프로젝트도 이어지고 있지 않나.

"제가 '첫 여름, 완주'라는 책을 만들며, 시각장애가 있는 독자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그분들께서 하나같이 말씀하셨던 것이 '너무 잘해주지 말라' 했다. '과하게 친절할 필요 없다.', '너희가 좋은 책을 만들어주면 산다', '주려고 하지 말고, 잘 만들어서 팔아라'라고 하셨다. 원샷한솔님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제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괜한 편견을 가진 것 같다. 한솔님도 핸드폰을 보고, 문자도 하고, 다 할 수 있다. '잘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가 저의 편견이었다. 그걸 느낀 것 같다."

Q. 개인적으로, '얼굴'에서 느꼈던 한 지점과도 맞닿아있는 말 같다. 원작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스스로 '얼굴'을 바라보는 시각도 궁금하다.

"너무 많은 해석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면면이 납득이 될 작품이라, 하나를 콕 찝어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저는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성과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성공하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임영규라는 개인은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한 사회로도 대변이 되는 인물 같다. 처음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도 가장 끌린 부분이었다. 감독님께서 '내가 성과주의적인 인물이다, 그런 지점을 되돌아보며 쓴 대사들이고, 그린 그림들이라서 이 작품을 좋아한다'라고 하셨다. 아마도, 그래서 이 작품을 적은 예산으로 했던 것 같다. 어떤 구애도 받고 싶지 않아서. 자본의 논리가 아닌, 고스란히 '얼굴'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을 것 같다. 그걸 취할 사람은 취하고, 취하지 않을 사람은 취하지 않는, 그 자유를 선택하려면, 아마도 자기 회삿돈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영화 '얼굴'에서 젊은 날의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의 모습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와우포인트(WOWPOINT)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부분이 '얼굴'의 중심축에 있지 않나. 우려나 염려도 있었을 것 같다.

"외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사실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고, 실제로 예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 시대가 허용했기에 현재의 영화에서도 허용할 수 있는지는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사실 작품을 찍다 보면, 그런 것들에 갇혀서 자기표현을 아예 못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 표현을 지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라고 하면서, 해야 하는 표현도 순화하거나 아예 빼는 경우가 있다. '얼굴'은 그런 지점에서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이를 바라봄을 통해 관객에게도 가닿는 것이 있을 거 같다."

Q. '얼굴'에는 그만큼 많은 감정 표현이 담겨있다. 특히, 젊은 시절의 임영규가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까지 물음표 없이 갈 수 있었던 것은 배우 박정민에게 기댄 바가 컸던 것 같다. 백주상(임성재)가 머리에 맥주를 들이붓고 집에 가는 길에 차에 신경질을 부리는 장면에 담긴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쉽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가?'라는 마음으로 했다. 그런데 차에 신경질을 내는 장면을 찍을 때 어려웠던 건, 그 전 장면을 어떻게 해야 잘 이어질까 하는 지점이었다. 대본상에는 '백주상이 맥주를 머리에 붓고, 임영규가 수치스럽고 모멸감을 느끼는 표정을 짓는다'라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모니터하면서 감독님께 ''백주상이 맥주를 부으면 오히려 웃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 앞에서 '개처럼 굴겠다'고 선택하면, 차에 화내는 장면이 동어반복처럼 느껴지지 않을 거라 싶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하는 행동과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수모를 당해도 웃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감추고 사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래서 내면이 엄청 기괴해졌을 거다."

영화 '얼굴'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마지막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생각도 궁금하다.

"임동환이라는 사람이 그 '얼굴'을 보고, 어떻게 하면 대본에 적힌 것처럼 '오열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정영희의 '얼굴'이 완성됐다고 하더라. 준비 과정에서 안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촬영할 때 보고 싶다고. 일부러 보지 않았다. 계속 보지 않고 있었는데, 딱 그 촬영하는 날 누군가의 실수로 사진을 먼저 봐버렸다. 그런데 그때 제가 울컥하는 마음이 딱 들더라. '여기서 울어야지'가 아니고, 연기를 하다 보면, 제 몸에 쌓이는 것들이 있다. 젊은 아버지 역할을 했기에, 감정적으로 쌓인 게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보니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올라오며 '큰일났다'고 걱정했다. 다행히 촬영할 때, 바로 눈물이 났다. 정영희가 가여웠던 것 같다.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나의 엄마라면, 그렇게 온갖 멸시만 당하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라면'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관객으로 그 장면을 볼 때, 역광 속에서 고개 숙여 우는 임동환의 모습이 '젊은 날의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제가 1인 2역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아버지의 회한 같은 느낌도 들었다. 좋아하는 장면이다."

영화 '얼굴'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출판사 대표로, 배우로, 대중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를 포괄해 '창작자 박정민'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는 어떤 걸까.

"특정지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숨겨져 있지만, 충분히 해야 하는 이야기, 애써 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다. 뉴스 기사를 스크랩하는 습관이 있다. 보다 보면, 언론사에서 충분히 취재하고 알리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만약,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다면, '그중에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어렴풋한 생각을 한다."

Q. '얼굴'을 통해 극장 앞에서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또, 오는 12월 2일 서울 GS 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안식년의 끝을 알리게 될 것도 같다.

"관객을 만나는 건 너무 재미있다. '확실히 내가 이 일을 재미있어 하는구나'를 다시 느끼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사실 무대가 무서워서 안 하고 싶었다. 항상 고사해 왔었다. 그런데 이건 좀 멋있어 보일 것 같았다. 무대에서도 그렇고, 이걸 선택했다는 것도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선택에 대해 자아도취 되어있는 상태다. 저는 별로 도전하는 걸 안 좋아한다. 출판사도 남들이 볼 때는 도전으로 느껴질 수 있을 텐데, 저는 도전의 개념으로 접근한 적은 없다.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해내 보겠어'하는 도전의 느낌이다. (웃음)"

'얼굴'에는 여러 마음이 담겼다. 이런 뾰족한 영화들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고,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며 놓치고 간 것은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마음 등도 담겨있다. 그 중심에 박정민이 있다. 그리고 '얼굴'을 바라보는,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쭉 지켜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다.

영화 '얼굴'에서 젊은 날의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의 모습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와우포인트(WOW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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