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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은 반하고, 박희순은 흠모해왔음을 '어쩔수가없다'…염혜란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5.10.15 00:01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아라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 / 사진 : 에이스팩토리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염혜란에게 반해서 캐스팅했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영화 감독들이 주는 시상식에서 처음 염혜란을 보고 다음 날 그에게 연락해 아라 역을 제안한 이유다. 그리고 '어쩔수가없다' 무대인사에서 배우 박희순은 염혜란을 오랜 시간 흠모해 왔다고 고백했다. 이성민은 인터뷰에서 "놀랍다"라고 염혜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 염혜란의 매력을 '어쩔수가없다'.

'어쩔수가없다'는 갑자기 실직한 만수(이병헌)가 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는 자신만의 전쟁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 중 아라는 범모(이성민)의 아내이자, 배우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시나리오에 '아름다운'이라는 묘사가 되어있을 정도로 '아라'는 그 자체로, 꽃으로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염혜란은 텍스트로 존재했던 '아라'를 스크린에서 활짝 피워냈다. 그리고 눈앞에서 수많은 캐릭터로 존재하는 염혜란은 그 모습 그대로 눈부셨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아라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 / 사진 : 에이스팩토리 제공

Q. 감독 박찬욱을 반하게 하고, 배우 박희순이 흠모해 왔음을 고백받았고, 배우 이성민이 "여전히 놀랍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꾸 사랑 고백을 받고 다니는 소감이 궁금하다.

"박희순은 그 상영관에 제 초대 손님이 많다는 말을 듣고 무대 인사 때 놀리느라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웃음) 저야말로 너무 좋아하는 배우님들이셨다. 특히, 이성민, 박희순 선배님은 연극을 할 때 뵌 분들이시니까. 박희순 선배님은 극단 '목화'에 계실 때, 로미오셨다. 이성민 선배님도 극단 '차이무'에서부터 유명하셨다. 저는 그때부터 그분들의 팬이었다. 한 작품에서 만났다는 그 자체로도 행복했다. 박찬욱 감독님과는 한국 감독협회에서 주최한 시상식에서 뵈었다. 첫 만남에서 '나, 아라를 주고 싶은 사람을 찾았어'라고 하셨다더라. 어쩜 말씀도 이렇게 하시는지. 아라 캐스팅을 굉장히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제가 '도대체 시상식에서 제가 뭘 했는지' 묻고 싶었는데 참았다. 그때 되게 예뻤다고 하셨더라."

Q. '아라'는 시나리오 속에도 '아름답다'라는 묘사가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스크린에서 염혜란은 눈이 부셨다.

"제가 그래서 얼마나 스태프들에게 감사한지 모른다. 특히 분장 감독님은 시리즈 '마스크걸' 때도 같이 했던 분이셨다. 의상도, 메이크업도 여러 번 테스트해 봤다. 싸우면서 어깨가 노출되어야 해서, 늘어나는 재질부터, 단추가 뜯어지는 재질까지 여러 의상을 많이 입어봤고, 그런 의상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뒀다. 처음 해본 게 많았다. 처음으로 속눈썹도 붙여보고, 처음으로 네일아트도 해보고, 처음으로 피부과도 많이 가며 노력했다. 단순히 이 여자가 예쁜 게 아니고, '나이 들었지만 놓지 않는 여자'를 표현하고 싶었다. 나이 들어도 긴 머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들처럼 말이다. 아라에게는 그런 면이 있기를 바랐다. 범모는 잃어가는 것에 절망만 하고 있다면, 아라는 잃어가는 것을 복구하려고 하고, 긍정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 나이대의 여성이 가진 걸 놓지 않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 사진 : CJ ENM 제공

Q. 박찬욱 감독님은 워낙 디테일이 강한 분이시지 않나. 함께 작업하면서 느낀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잔뜩 겁을 먹고 갔는데, 오히려 의견을 많이 들어주셨다. 저는 리딩을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연극할 때 좋은 것도 있다. 무대에 오르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제 세계다. 그런데 리딩 때는 부끄러움이 저를 감싼다. 박찬욱 감독님께서 '장음, 단음'도 예민하게 들으신다고 하셔서 긴장했다. 그런데 '네가 준비해 온 걸 검사하겠어'라는 자리가 아니고, '이렇게 하고 싶은데, 불편한 게 있으면 뭔지 말해줘'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래도 장음, 단음을 많이 찾아보고 가긴 했다. (웃음) 말의 디테일을 살리는 분이셨다. 아라의 대사 중에 '이 공감 능력 부재한 비실비실한 XX야'라며 돌을 던지는 부분이 있다. 그 말이 입에 잘 붙지 않았다. 그걸 아시고 '어떤 말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물어보셨다. 저도 종이와 관련된 '습자지 같은 XX', '이면지 같은 XX' 등 여러 의견을 말씀드렸다. 그러면 다음 수정고에 다 반영해 주신다. 그리고 수정된 부분을 하나하나 체크해 놓으신다. 정말 박찬욱 감독님의 디테일을 '어쩔수가없다'이다."

Q. 영화의 초반부, 남편이 죽은 미망인 연기를 하기에 너무 예뻤던 아라는 결국 후반부에 메소드 연기를 하게 된다. 실제로 배우이기에, 그 지점이 묘했을 것 같다.

"사실 아라가 세팅한 무대 아닌가. 그 장소를 위해 아라가 준비하는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상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처음 오디션 장면과 비슷한 헤어스타일 등을 논의했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마지막 장면을 초반에 찍었다. 암막을 친 공간에서 찍었는데, 현장에서 형사들이 잠깐 창을 여는 지점이 추가됐다. 아라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두려운 지점이 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셨는데, 그때 아라가 입버릇처럼 하는 '맙소사'가 붙으니 더 좋더라. 진짜 연기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비로소 아라가 가장 좋은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도 비극적이다. 그 장면이 마지막에 만수(이병헌)의 막내딸이 첼로를 켜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사건은 다 벌어지고, 가장 큰 비극을 맞고 나서야, 뭔가가 터져버리는 것이. 저는 그래서 더 비극이라고 느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아라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 / 사진 : CJ ENM 제공

Q. 반대로 연기를 하면서 더 자신을 발견하는 지점도 있을 것 같다.

"'어쩔수가없다'라는 작품을 받고, 고민할 때 '마이네임이즈 가브리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찍었다. 너무 걱정되었는데, '가브리엘'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갔다. 제가 예능 울렁증이 있어서 예능을 잘 못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다른 인물로 살아보는 거다. 의도 자체가 배우가 연기하는 느낌이다. 그 캐릭터에 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다. 3일 동안 그 사람으로 사는 건데, 그곳에서 계속 아라 생각이 났다. 아라는 나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가브리엘'에서 맡은 인물이 중국 충칭에 사는 화라라(치엔윈 별명)이었다. 삶을 극적으로 발견해 나가는 분이었다. '염혜란도 그렇게 살아보자' 생각하며 그 인물로 산 거다. 그러고 나니, 아라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브리엘'은 저에게 시청률을 떠나서 너무나 소중한 작품이다. '생각해 보니, 나 이런 면이 없지 않았네'라고 발견하게 한 작품이다. 저도 제 주장이 강하고, 자유롭게 지낸 시간이 있었다. 아라도 그랬다. 저랑 다른 사람 같지만, '내 안에 있는 사람이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점을 발견하고 감독님께 '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 계속 '나한테 이런 모습은 없어'라는 부분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제가 많이 고민되고, 주저하게 될 때, 화라라의 카드를 꺼내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아라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 / 사진 : 에이스팩토리 제공

Q. 아라는 '끝까지 가진 걸 놓지 않는 여자'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염혜란에게 그런 지점도 있을지 궁금하다.

"'뭐가 이렇게 두렵고, 걱정될까?' 생각하다가 옛날 일기나 메모를 보면, 10년 전에도 같은 고민을 했다. 바보 같다. 이번에도 인터뷰하는 게 두려웠고, '어쩔수가없다'의 결과물을 관객이 어떻게 봐주실지 너무 두렵다. 광례('폭싹 속았수다')의 강한 이미지도 잊으셨으면 좋겠고, 아라를 아라로 봐주실 수 있을까도 걱정되고. 그런 생각으로 가득할 때, 가까운 분들이 이야기해 주셨다. 지금 박찬욱 감독님과의 시간이 얼마나 좋은 기회이고 시간인지 알고, 즐기면 좋겠다고. 저는 '어쩔수가없다' 시사를 본 후에도 구석에 숨어있었다. '술 한 잔 먹으러 가자' 하면 저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다음부터 핑계도 필요 없고, 결과물에 책임지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에도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부터 무대인사 가서도 '저는 대세 배우 염혜란입니다'라고 인사한다. 행복한 시간인데 쫄아붙어 있지 말고 느끼자. 맨날 바보 같은 글이나 쓰다가, 이제는 조금 그러지 말고, 이 시간을 즐기자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속도가 붙지는 않지만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좋은 작품을 만나 많은 칭찬을 받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나 자신을 잃지 말아야겠다'라고 늘 생각한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아라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 / 사진 : CJ ENM 제공

Q. '어쩔수가없다'는 가을 같은 작품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염혜란은 어떤 계절에 살고 있을까.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계절에 빗대어서 하는 말들이 있다. 저는 찬란한 봄보다는 늦은 겨울이 더 희망적일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꽃이 필 일만 남았으니까. 봄은 폈다 지기도 한다. 지금 저는 봄 같지만, 봄 같지는 않다. 나중에는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한참 하는 말들은 과거가 된 후에야 진짜로 느끼는 것 같다. '그때가 찬란했구나' 하고. 지금보다 조금의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날 것 같다. (웃음)"

시간이 지나 '지금 염혜란의 계절'을 뭐라고 이야기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두고두고 그 계절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 마음은 아마도 두고두고 그의 연기를 보며 울고 웃고 싶은 마음의 크기와 같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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