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 사진 : ㈜바른손이앤에이
주인이는 참 밝고, 궁금한 것도 많다. 학교에서도 우당탕탕, 남자 친구와의 스킨십도 과감하다. 엄마가 “어떻게 한 달을 못 넘겨?”라고 하는 걸 보니, 연애 기간은 짧은 편. 평소처럼 학교에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고, 친한 언니도 만나고, 남동생과 싸우기도 하고, 엄마한테 잔소리도 하고, 그렇게 지낸다. 그런데 성범죄자 출소 소식이 전해진다. 과거에 살던 주인이네 동네에서 살 거라고 한다. 동네는 떠들썩해진다. 학교에서도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모두가 서명한 가운데, 주인이는 서명을 거부한다. 서명운동을 받는 글에 있는 한 줄 때문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세계의 주인’은 주인이의 삶 속에서 며칠 정도를 꺼내어와 관객에게 전한다. 관객들은 상영시간 119분 동안 그 며칠을 함께하며, 보다 주인이에게 보다 깊게 다가선다. 영화는 주인이를 중심으로 흐르지만, 주인이만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이를 둘러싼 엄마, 아빠, 동생,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의 시선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혼자라고 생각하던 순간에도 주변의 시선, 공기, 작은 소음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주인이는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아픔이 알려진 순간, 주변의 공기는 싹 달라진다. 모르고 봤을 때는 자연스러웠던 엄마와 딸의 대화도, 그 아픔을 아는 순간 그 모든 게 엄마의 노력으로까지 느껴진다. “몰랐을 때가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가장 솔직한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이는 시선과 다르게 살아간다. 앞에서 말했듯, 엄마와 수다도 떨고, 남동생과 싸우고, 친구들과 투닥거리며 웃고 울고, 너처럼 나처럼 살아간다. 영화 ‘세계의 주인’ 속에서 마주한 ‘주인의 세계’는 그랬다. 그렇기에 극장을 나오면서 관객 한 명마다 화두를 안고 나오게 될 거라 자신한다.
‘세계의 주인’을 보다 보면, 다큐멘터리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주인이는 어디에선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손에 잡힐 듯한 희망을 준다. 괜찮다는 말보다 더 뜨거운 포옹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우리집’, ‘우리들’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의 힘이다. 윤가은 감독은 ‘세계의 주인’ 속에서 무리한 줌, 아웃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동하듯 그렇게 카메라가 이동한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연상케 하는 그는 묵직하게 인물을 끌고 가기보다 그 뒷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하려 한다. 세차게 물이 쏟아져서 밖에는 그 울음과 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공간, ‘브레이크를 밟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는, 세차장에서야 세차게 울음을 터트리고 소리를 지르는 주인이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다.
주인 역을 맡은 서수빈은 ‘세계의 주인’을 통해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날 것 그대로의 주인이를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마주하게 될 럭키한 기회를 얻었다. 주인이를 둘러싼 인물들에는 장혜진, 이석훈, 고민시 등이 함께했다. 익히 알고 있는 배우들이지만 각자 품은 미묘한 감정들을 촘촘하게 수놓으며 극 중 인물로 다가서게 한다. 이들 모두는 각각의 캐릭터로 존재하며 동시에 ‘주인이 세계’의 일부다.
주인이의 동생은 다양한 마술을 펼쳐 보이지만, 가장 클라이맥스에 선보이는 마술은 모든 걱정 근심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다. 그 마술은 누나, 주인이를 위한 수련인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라는 말을 많이도 하는 누군가에게 우리가 다가서는 것은 그런 사려 깊은 마술 같은 마음이 아닐까.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오면서, 집에 있는 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물어봐야지. 그 말보다 더 많이 들어줘야지. ‘세계의 주인’ 속에 119분 함께하며 가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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