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장시율을 통해 제 속에 있는 외로움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지 않나. 28살의 로운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매일매일 했다. 그래서 후련하다는 의미로 매 촬영 끝날 때마다 '탁류 맛있다!'하곤 했다."
로운은 '탁류'를 '시원한 동태탕' 같다고 표현했다. 뜨겁고 거칠 수 있지만 '시원하다', '맛있다'라는 말로 표현하게 되는, 그런 진국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대중에게 각인된 기존 모습을 벗고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로운과 지난 15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디즈니+ 시리즈 '탁류'는 조선의 모든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경강을 둘러싸고 혼탁한 세상을 뒤집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각기 다른 꿈을 꿨던 이들의 운명 개척 액션 드라마다.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 '7년의 밤', '행복의 나라'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과 '추노' 이후 14년 만에 사극으로 돌아온 천성일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로운은 사극 대가들이 꾸려준 환경 속에서 마음껏 연기했다. "완벽에 가까운 걸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했다"라고 말할 만큼, 모범적인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왈패 '장시율' 그 자체로 분해 '로운인 줄 몰랐다'라는 반응까지 끌어냈다.
Q. '탁류'로 오랜만에 시청자를 만나게 됐다. 작품의 어떤 점에 끌렸나."이 작품을 처음 읽고 정말 좋았던 게, '나 심성 고운 놈 아니오'라는 대사였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너무 좋아서 선택했다. 이후에 미팅에서 감독님을 뵀는데 감사하게도 제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말씀해 주셨다. '믿고 맡길 수 있겠다' 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Q. '혼례대첩' 이후 2년 만에 드라마 복귀 소감은 어땠나."일단 너무 신났다. '이런 작품이 드디어 나에게 왔구나' 하는 마음에 너무너무 신났다. 이제까지는 바른 이미지와 꽃도령 변호사, 이런 각 잡는 예쁜 역할 하다가 왈패 캐릭터를 만났다. '저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누군가는 역시 봐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Q. 아픈 과거를 가진 '장시율' 캐릭터는 대사도 많지 않아 눈빛과 액션을 보여준 연기가 많았다. 캐릭터 준비 과정도 궁금하다."시율이는 결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한 결핍이 분명히 있는 인물이다. 시율은 이름을 불려서는 안 되고, 집도 없는 캐릭터다. 저는 불릴 이름과 돌아갈 집은 인간의 소속감이라 생각한다. 집과 이름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살아 있는 게 아닌, 사회에서 동떨어진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무껍질 같은 질감을 가진 인물로 표현하려 했고, 껍데기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Q.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잘생김을 내려놓지 않았나.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잘생김이 오래가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웃음) 잘생긴 역할도 하나의 좋은 무기고 설득력이 될 수는 있지만, 그거 하나 가지고는 배우로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넝마 옷도 정말 편했다. '탁류'는 98%가 야외 촬영이라 길바닥에 막 앉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비단옷 입을 때는 구겨질까 봐 잘 앉아 있지 못했는데 이번엔 아주 편했다. 여러모로 저는 도련님보다 왈패가 잘 맞더라. 하하."
Q. 막싸움에 가까운 날것의 액션도 있었다.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무술 감독님께서 '짜여있지 않은 액션'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리된 합이 아니라, 속된 말로 '개싸움'처럼, 잡히는 대로 던지고 때리는 모습을 준비했다. 덕분에 액션이 되게 사실적으로 담긴 것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제가 아이돌 출신이라 춤을 오래 췄는데, 이게 액션이 도움이 되더라. 뼈저리게 느꼈다. 무술을 하나의 안무라고 생각하니 합도 빨리 외울 수 있었다. 특별히 준비했다기보다 꾸준히 열심히 한 게 다였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로운인지 몰랐다'라는 반응이 정말 좋았다. 제가 '장시율' 배역 그 자체로 보였다는 거니까.(웃음) 고등학교 친구들도 이제껏 제가 나온 작품은 낯간지러워서 못 보겠다고 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정말 안 쉬고 5화까지 다 봤다'고 하더라. 제 작품 안 보던 괘씸한 녀석이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까 더 고마웠다."
Q. 또래 배우 박서함, 신예은과의 현장 호흡도 궁금하다."예은이는 에너지가 정말 좋은 친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셨듯이 되게 밝다. 그만큼 연기할 때는 냉철하고 공부하듯이 열심히 하는 친구라 저도 옆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제가 한 신에서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예은이의 연기를 보니까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선이 보였다. 예은이는 상대방이 길을 잃었을 때 알려주는 배우구나 싶었다."
"(박)서함 형은 군 전역 후 오랜만에 복귀작이고 게다가 사극이라 부담이 많이 됐을 것 같더라. 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저렇게 순수하게 연기에 임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두 번째 작품만에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잘하나 싶었다. 저는 초반에 '어버버'했었는데. (웃음) 나중에 좋은 작품으로 또 만나고 싶다."
Q.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다행히 입대 전 '탁류' 홍보 일정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입대 소감은 어떤가."원래 지금쯤이면 자대배치 받고 훈련하며 적응할 시기다. 솔직히 처음에는 불가피하게 입대가 미뤄져서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는 이미 가족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만 작품 홍보를 못 하고 가는 게 내내 찜찜했다. 홍보까지 하는 게 배우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군대는 몸 건강히 다녀올 생각이다."
Q. 군 전역하면 30대가 된다. 20대를 마무리하는 마음과, 전역 후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20대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솔직히 남들과 비교하며 제가 저를 힘들게 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저를 못살게 굴면서 20대 초반을 보낸 것 같다. 지금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까진 아니지만 저를 더 위할 줄 아는 스물아홉이 됐다. 다가오는 30대에는 더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꾸준히 열심히 하면 누군가 나를 봐주고 있을 거야. 오늘을 열심히 살자'하는 마음으로 살 것 같다."
"(전역 후 저는) 정말 섹시할 것 같다. 저는 진지하다. (웃음) 여유가 생겨서 저를 더 믿고 하나하나 도장깨기 하듯 앞으로 잘 걸어가고 싶다. 일도 열심히 하겠지만, 주변에 좋은 인상과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로운은 이제 잠시 연기를 내려놓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떠난다. 분명 군 복무 이후 더욱 단단해질 서른의 로운은 어떤 빛을 더하게 될까. 또 다른 얼굴의 로운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