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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실사영화 1위 한국인 감독' 이상일, '국보'에 담은 빛과 그림자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5.11.26 15:52

이상일 감독이 일본에서 영화 '국보'로 실사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새로 썼다. / 사진 : (주)미디어캐슬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국보'의 스포일러가 많은 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국보'는 제목처럼 일본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일본에서 실사 영화 1위에 등극한 것. '국보'는 지난 11월 24일(월)까지 개봉 172일 동안 17,377,394,500엔(한화 약 1,634억 원)을 돌파, 1,231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1위에 등극했다. 무려 22년 만에 갱신된 기록이다. 특히, 이를 연출한 감독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이상일 감독이다. 일본에서 최초로 한국인 감독이 천만 감독이자, 실사 영화 흥행 1위 감독이 된 것이다.

영화 '국보' 속에 중심축이 된 것은 일본의 전통 연극 '가부키'다. '가부키'에서 풍기 문란을 이유로 여성은 무대에 오를 수 없기에, 남성이 여성의 역할까지 한다. 이를 '온나가타'라고 한다. '온나가타'는 단순히 여성을 흉내내는 것이 아닌, 여성의 이상적인 동작과 형태를 펼쳐 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국보' 속 두 인물 키쿠오(쿠로카와 소야, 요시자와 료)와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는 진정한 '온나가타'로 무대에 서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다. 키쿠오는 재능을 타고났고, 슌스케는 혈통을 타고났다. 가부키의 명문가는 혈통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기에 혈통을 타고난 것은 모든 것을 가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둘의 대비는 결국 영화 속의 붉은 색과 하얀색처럼 이어져 '예술'로 귀결된다.

이상일 감독 역시 한국인의 혈통을 타고났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인간 본질을 꿰뚫는 화두를 관객에게 전해왔다. 영화 '훌라 걸스', '악인', '용서받지 못한 자', '분노'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에서도 사랑받는 이상일 감독이 '국보'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내내 이상일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익숙한 일본어가 아닌 서툴지만 꼼꼼하게 집어 가며 한국어로 전했다. 그 자체에서 그의 집요한 뚝심, 자신의 예술을 향해 나아가는 '거장'의 모습이 비쳤다.

영화 '국보' 스틸컷 / 사진 : (주)미디어캐슬

Q. 일본에서 1,231만 관객 수를 돌파하며 실사 영화 1위에 올랐다. 22년 만에 새로 쓴 흥행 기록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굉장하다. 20여 년 만에 이런 숫자가 나왔다.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이 강세였다. 실사 영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보' 역시 어려운 조건이었다. 장르도 액션이 아니고, TV 드라마가 영화로 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정보가 적은 상태로 긴 상영시간의 휴먼 드라마를 보기 위해 극장에 와야 했다. 허들이 높았다. 그런데 그걸 뚫고 나가는 작품의 힘이 있었다. 이런 작품을 사람들이 원하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모든 것이 관객의 힘 덕분이다. 관객들의 보는 눈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Q. '국보' 속에 등장하는 '가부키' 속 곡들은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이를 선정하기 위한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국보'는 영화라는 장르이지만, 하나의 오페라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길 바랐다. 장대한 대서사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삶은 일상에도 있지만, 무대에도 있다. 무대도 삶의 한 부분이기에 감정이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런 생각을 중심에 두고 연결되는 곡과 장면을 뽑았다."

일본영화 '국보'를 연출한 이상일 감독 / 사진 : (주)미디어캐슬

Q. 그렇기에 배우들의 감정이 더 진하게 뿜어져, 관객에게도 크게 가닿는다. 감독으로서도 배우의 연기에 전율하게 된 장면이 있었을 것 같다.

"'국보'라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왜 가부키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고, 영화배우를 캐스팅했나?'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꼭 영화배우가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증면된 순간이 있었다. 키쿠오가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대역으로 오하츠 역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였다. 그냥 '가부키를 잘 한다'라는 것 이상으로 키쿠오 내면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압박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을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이것이 영화배우가 해야 하는 이유'라고 확신했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와 연기를 한 요시자와 료도 아마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Q. 그런 의미에서 '국보'의 중심축이 된 두 배우 요시자와 료와 오가키 슌스케의 어떤 얼굴을 보고 캐스팅했는지 궁금해진다.

"요시자와 료는 '리버스 에지', '킹덤' 시리즈가 인상 깊었다. 특히 '킹덤'은 영화 장르가 액션이고, 리얼한 세계라기보다 만화적인 세계관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시자와료만 리얼한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요코하마 류세이는 '유랑의 달'이라는 작품을 함께하며 느낀 인상이 깊다.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지만, 굉장히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진짜 잘하고 싶다'라는 뜨거운 마음이 귀엽게도 보인다. 요시자와 료와 요코하마 류세이는 어떤 면에서 고양이와 강아지 같다. (웃음)"

'국보' 스틸컷 / 사진 : (주)미디어캐슬

Q. '국보'는 분명 키쿠오와 슌스케를 중심 서사로 두고 흐르지만,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 또한 깊다.

"가부키에 인생을 바치는 배우와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큰 빛을 받는다. 그런데 그 빛 때문에 더 많은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빛을 받으면 그림자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일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필요했다."

Q. 키쿠오의 아버지의 마지막, 만기쿠의 무대, 그리고 키쿠오의 무대로 이어지기까지 눈과 같은 반짝이는 형상이 있었다. 의도한 지점인가.

"키쿠오는 자신의 아버지가 눈 속에 쓰러져 피가 흐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위로도 눈이 내린다. 그 순간은 아마 인생에서 가장 아픈 순간이었을 거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순간이 너무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을 거다. 키쿠오의 원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키쿠오는 가부키를 하면서도 그 아름다운 순간을 쭉 찾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키쿠오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른다. 힌트가 있다면, 어린 시절, 가장 아픈 그 눈 풍경인 것 같다. 눈 풍경이 삶에서 변화해 가는 느낌이다."

'국보' 스틸컷 / 사진 : (주)미디어캐슬

Q. 당대 최고의 인간 '국보' 가부키 배우인 만기쿠(타나카 민)의 말년을 보여주는 장면에 담긴 인형에 대해 '자신을 의인화시킨 것처럼 영혼을 담았다 뺐다 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렇기에 그 공간에 간 키쿠오의 모습이 오래 남는다. 그가 어떤 지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만기쿠는 키쿠오에게서 자기와 같은 뿌리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키쿠오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중간에 만키쿠는 슌스케를 가르치게 된다. 하지만 만기쿠가 키쿠오를 직접 가르친 적은 없다. 제 생각에 그것은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직접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만기쿠는 '무대 밖에는 삶이 없다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키쿠오에게 '너 삶은 무대안에 있다'라고 전한 거다. 만기쿠의 마지막은 사람에 따라 초라하게도, 평온하게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아름다움을 쫓아온 삶이었다. 그래서 누구도 없이 누워있는 상태는 무의 상태로 보인다. 키쿠오의 눈에 만기쿠의 마지막은 굉장히 평온하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기쿠에게는 아이가 없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키쿠오가 그의 혈통이 아닌, 예술로 이어간다는 느낌이 있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Q. 영화 '악인', '분노'에 이어 '국보'로 일본 현대문학 대표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글을 세 번째 영화화하게 됐다. 이상일 감독에게 요시다 슈이치 작가는 어떤 존재일까.

"가장 신뢰하는 분이다. 그리고 저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악인'을 보면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세상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제가 못하는 것을 이렇게 쓸 수 있는 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악인'이 완성된 후, 작가님께 '온나가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요시다 작가님도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이후, 각자 활동을 이어왔다. '가부키' 영화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제도 어렵고, 제작비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저는 '분노'도 만들었고, 요시다 작가님은 가부키를 취재하며 집필하셨다. 그때 이야기한 것이 남아있었구나 싶었다. '국보'가 완성되며 자연스럽게 같이하는 인연이 이어졌다."

'국보'를 연출한 이상일 감독 / 사진 : (주)미디어캐슬

Q. 한국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해 오셨다. 차기작에 캐스팅하고 싶은 한국 배우가 있을지 궁금하다.

"'파친코' 현장에서 함께한 배우들이 좋았다. 현장이 외국이기도 했고,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들과 함께했기에 잘 진행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다. 한국에는 좋은 배우들이 많다. 봉준호 감독님 작품 속 배우 송강호도 그렇고, '기생충'에서 배우 최우식도 좋았다. 최근에 본 영화 '승부' 속 이병헌도 너무 좋았다."

Q.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을까.


"아름다움과 정반대에 있는 것을 표현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그 지점을 찾아가고 싶다."

이상일 감독에게만큼은 선(善)의 반대말이 악(惡)이 아니고, 미(美)의 반대말 역시 추(醜)가 아니다. '국보' 속에서 그는 50년에 걸친 한 사람의 생을 비춰보며 그 속에 빛이 만들어낸 화려함 이상으로 그 뒤에 길게 누운 그림자에 오래 시선을 두었다. 그렇기에 이상일 감독 역시 자신의 생을 걸고 해가는 '예술'에 더 궁금해진다. 그가 다음 작품에서 어떤 고통과 어떤 아름다움이 뒤섞인 순간을 다시 포착해 낼지, 그리고 그 순간이 또 어떤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데려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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